[Hyosung Blogger] 모모리의 여행이야기(6) 귀가 두 개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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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몸담고 있는 효성 인포메이션 시스템은 스토리지 시스템 및 관련 솔루션들을 판매, 서비스하는 효성의 계열사입니다. 한마디로 IT 회사죠. 그 안에서 저는 컨설팅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컨설팅이란 어떤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고객을 상대로 상세하게 상담하고 도와주는 것’이라는 사전적 의미처럼 제가 하는 일은 고객사의 전산 환경을 분석하고 개선점을 도출하거나 향후 IT 아키텍처를 그려주는 것입니다.

1년 남짓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끼는 점은 ‘좋은 컨설턴트가 되기 위해서는 고객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객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잘 알아야 해결책도 나올 수시 있는 거지요. 때로는 고객이 하는 말 속에 이미 해결책이 나와 있는 경우도 있고 말입니다.




하지만 남의 말을 잘 들어야 할 때는 또 있습니다. 바로 여행을 할 때지요. 처음 찾아간 여행지, 그 낯선 곳에서 적응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는 ‘정보’라는 것이 필요하고, 그 정보라는 것은 현지인의 입을 통해 들어올 때가 많기 때문이지요.

오래 전(그래요, 벌써 아주 오래된 얘기가 되었네요) 처음 사회에 발을 디뎠을 때, 싱가포르로 신입사원 연수를 간 적이 있습니다. 빽빽한 연수 일정을 마치고 저녁 때 동료 신입 사원들과 킹크랩을 먹으러 씨푸드 레스토랑을 찾았어요. 메뉴를 보니 1인당 30달러 정도면 배불리 먹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때 우리의 주문을 받고 난 웨이터가 전복을 추천했어요. “온리 쓰리 딸러 뻐 뻘슨(only three-dollar per person)”을 강조하면서 말이죠. 그깟 3달러, 우리는 흔쾌히 주문했어요. 5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합한 사이즈의 전복을 에피타이저로 해치우고 칠리/블랙페퍼/프라이드 킹크랩에 볶음밥까지..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받아 든 우리는 인당 33달러가 아니라 60달러라는 사실에 의아해했지만 곧 알아차렸죠. 전복 가격은 “온리 쓰리 딸러”가 아니라 “온리 써리 딸러(only thirty-dollar)”였다는 것을요. 동남아의 영어 발음에 익숙치 않았던 탓이기도 하지만 전복은 양이 적으니 당연히 저렴할 거란 생각으로 상대방의 말에 잘 귀 기울이지 않은 탓도 있었던 거죠. 또 한 번은 호주에서 태국을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태국에서 일주일 정도 체류하기로 했는데 공항 직원의 말에 대충 예스, 예스 하다가 짐은 한국으로 곧장 보내질 뻔한 일도 있었죠. 스탑오버의 개념도 몰랐던 학생 때의 이야기네요.





사실 여행지에서 남의 말을 잘 듣는 것은 ‘정보’를 얻어 어려움 없이 여행을 한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줍니다. 여행의 횟수가 많아지면서 저는 어느 한 곳을 더 구경하는 것보다 어느 한 사람을 더 알아가는 것이 더욱 가치 있는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이 알려주지 않는, 박물관이 보여주지 않는 거기서, 현재를, 진짜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으니까요. 여행에서 깨달은 ‘듣는 법의 미학’이 오늘 회사에서 제 업무를 수행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고요.

하긴 ‘잘 듣는 것이 덕이 되는’ 곳이 비단 여행지와 컨설팅 영역만은 아닐 겁니다. 신이 우리에게 두 개의 귀와 한 개의 입을 주신 이유는 ‘말하기보다 듣기를 두 배 더 하라’는 뜻이 담겨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나를 드러내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로 통하는 치열한 세상 속에 있어서 듣는 귀를 점점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그로 인해 오해와 상처가 잉태되기도 하고요.





쉽지 않지요.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것. 하지만 우리가 귀를 조금만 더 쫑긋 세운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살맛 나는 곳이 되지 않을까요. 저도 오늘은 한 개의 입과 세 개의 귀를 가진 자(에일리언처럼 보이려나요 -.-)의 자세로 보내야 겠습니다. ‘듣는 법의 미학’을 실천하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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