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팀, 배구 월드리그를 넘어 아시안 게임으로

Story/효성


한국 대표팀, 배구 월드리그를 넘어 아시안 게임으로



다양한 나라, 다양한 선수들이 활약을 펼쳤던 월드컵도 이제 막바지 일정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월드컵이 갖는 매력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국가와 국가가 벌이는 경기라는 점입니다. 국가 대표팀은 클럽팀에 비해 개성은 덜 뚜렷하지만, 그래도 국가 대항전에는 클럽 대항전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지요.


그런데 지금 월드컵 말고도 또 다른 구기 종목에서 국가 대항전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바로 배구 월드리그 입니다. 월드컵에 가렸던 소식, 좀 더 자세하게 알려 드릴게요.



배구 월드리그,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요?

 




국제배구연맹의 상업리그라 할 수 있는 월드리그는 매년 개최됩니다. 월드리그는 남성 리그인데요. 각국 배구 리그가 끝나고 한 달 뒤인 5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열립니다. (여성 리그인 월드그랑프리는 7월 말~8월 말까지)


2013년을 기점으로 월드리그는 큰 제도적 변화를 맞습니다. 바로 승강제 도입인데요. 즉, 1부 디비전의 8개 팀 중 최하위와 2부 디비전 12개 팀 중 1위팀을 서로 맞바꾸는 식으로 리그를 운영하게 됩니다. 월드리그는 3부 총 28개 팀(8팀-12팀-8팀) 대한민국의 경우 남자대표팀은 디비전 2에 속해 있지요.


2014년 기준으로 월드리그 예선은 한 조에 4팀이 편성이 됩니다. 한 팀과 토•일 2연전으로 총 네 번을 대결하며, 홈&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그래서 조별 리그는 총 12경기를 치르게 되지요. 여기서 각 조 1위팀은 결선리그를 치르게 되는데, 결선리그는 각 디비전(리그) 별로 매년 개최지를 정하여 열립니다.



높은 세계의 벽, 그러나 최선을 다해 유종의 미를

   




 


한국은 2부 디비전에서 네덜란드, 포르투갈 그리고 체코와 함께 E조에 배치 받게 됩니다. 최하위인 일본 덕분에 1차 목표로 삼았던 2부 디비전 잔류의 목적은 달성했지만, 아쉽게도 조별 예선에서는 4위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은 각 나라들을 상대로 1승씩을 기록했는데요. 특히 체코를 상대로는 50년만에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비록 3승 9패라는 성적을 기록했지만 그 중 5패는 풀세트 접전까지 가는 승부 끝에 기록한 패배라는 점도 눈 여겨 볼만 합니다.


마지막 경기에서도 포르투갈을 상대로 승리를 기록해 유종의 미를 거뒀습니다. 국제배구연맹의 규정 상 홈 경기 뒤 원정 이동하는 경우 현지에 도착은 경기 이틀 전부터 가능한데요. 대전에서 홈 경기를 치르고 유럽까지 피곤한 일정을 감당해야 했던 대표팀이지만 홈에서 당했던 패배를 세트 스코어 3-1로 설욕했답니다.



이제는 아시안 게임이다!

 




월드리그를 마친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은 본격적으로 제 17회 인천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훈련에 돌입했습니다.


대표팀은 8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13일부터 충북 진천 선수촌에서 합숙을 시작할 예정인데요. 포르투갈과의 원정에 나섰던 선수 대부분이 인천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에 나설 가능성이 큽니다.


박기원 대표팀 감독은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선수들의 전체적인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아시안게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구상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가능성을 보여준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이 9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기원합니다!



효성과 배구는 무슨 관계? 추억의 효성 여자배구단 이야기



효성 여자배구단의 제 9회 박계조배 전국 배구대회 여자부리그 우승

<1991년 7월 9일, 효성과 대농의 제 9회 박계조배 전국 배구대회 여자부리그 결승전 모습>



1973년, 효성 여자배구단(당시 동양나이론 여자배구단)이 창설됩니다. 그 무렵 선경, 코오롱, 한일합섬 등 많은 섬유기업들은 여자배구단을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각 배구팀들이 나름대로의 인기를 구가하는 중이었습니다.



효성 여자배구단의 제 9회 박계조배 전국 배구대회 여자부리그 우승

<1991년 7월 9일, 효성과 대농의 제 9회 박계조배 전국 배구대회 여자부리그 결승전 모습>



효성 여자배구단 역시 창단 바로 이듬 해에 권위가 높은 박계조배 배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등 우수한 성과를 거두며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1980년 9월에는 조석래 회장이 배구협회 회장으로 추대되었는데요. 배구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던 조석래 회장은 아시아주니어선수권대회에 참석한 학생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고충과 희망을 직접 들으면서 조직 개편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배구계를 효율화, 능률화 하였습니다.



효성 여자배구단의 제 9회 박계조배 전국 배구대회 여자부리그 우승

<왼쪽부터 결승전 도중 작전 타임을 갖는 효성 여자배구단과, 우승 후 그룹 임원들과의 기념촬영>



특히 조석래 회장은 이전과는 달리 과학적인 체육을 주창했습니다. 신장과 체력의 열세를 커버하기 위해 1981년을 ‘한국적 배구 기술 개발의 해’로 정하고 기술 개발을 위해 유능한 지도자에게 능력별로 프로젝트를 맡기고 연구비를 지원했습니다. 과학적인 이론을 토대로 한 새로운 공격 패턴을 개발하여, 이를 실전에 옮기도록 하기도 했지요.


도쿄에서 열린 아시아배구연맹 총회에서 부회장 후보로 출마해 승리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인사가 아시아 배구연맹의 요직을 맡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특히나 일본은 국제 배구계의 숨은 실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일본 한복판에서 거둔 쾌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효성 여자배구단의 제 9회 박계조배 전국 배구대회 여자부리그 우승

<각 일간지에 실린 효성 여자배구단의 박계조배 전국 배구대회 여자부리그 우승 기사>



비록 1980년대 초중반에 닥쳐 온 그룹의 위기 상황 때문에 1983년 7월 배구협회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조석래 회장의 배구에 대한 강한 애정은 우리나라 여자배구가 88 서울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동독에 승리하는 이변을 낳는 등의 밑거름이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