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야기] 두 개의 위기, 빚의 재앙


두 개의 위기, 빚의 재앙



월 스트리트, 그리스에 찾아온 위기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의 포스터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의 포스터, 출처 : 위키백과>



올해 초 개봉했던 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는 1980~1990년대 미국 전역을 떠들썩하게 했던 증권 브로커 조던 벨포트(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분)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평범한 증권사 인턴사원에서 출발, 몇 년 만에 5,000만 달러의 재산을 가진 ‘금융가의 황제’로 부상하지만, 주가 조작으로 결국 파산에 쇠고랑까지 차야 했던 조던 벨포트의 신기루와 같은 삶을 그렸습니다. 영화에서 월 스트리트는 광기와 탐욕의 거리입니다. 오직 돈을 향한 욕망만이 숨 쉬는 타락한 세상입니다. 픽션의 특성상 과장이 많긴 했지만, 이 영화는 월 스트리트의 숨기고 싶은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사실 미국 경제는 비정상의 경제입니다. 무역적자에 재정적자까지, 웬만한 나라였다면 이미 오래 전 디폴트(공•사채, 은행융자 등에 대한 이자 지불이나 원리금 상환이 불가능해진 상태)가 났어야 옳습니다. 하지만 무역적자로 빠져나간 돈보다 훨씬 많은 전 세계 자금이 월 스트리트로 몰려들기 때문에, 그 결과 달러의 위력이 재정결손을 얼마든지 메워주기 때문에, 미국은 지금도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 지위를 지탱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력은 제조업도 서비스업도 아닌, 온전히 금융의 힘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월 스트리트의 중심에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이 있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중심에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이 있습니다. 예금•대출 위주의 상업은행(Commercial Bank)과 달리, 투자은행은 말 그대로 금융상품 투자를 통해 수익을 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상업은행은 시중은행, 투자은행은 증권사에 가깝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투자은행은 미국 내 최고 연봉 직장입니다. 투자 수익에 따라 수백만 달러의 보너스가 제공됩니다. 때문에 투자은행이나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에서 일하는 아이비리그 출신의 천재들은 최대의 투자 성과급을 받기 위해 수학, 공학 등을 총동원해 기괴한 첨단 금융상품(파생금융상품)을 만들어냅니다. 이들 모두가 조던 벨포트인 셈입니다. 


탐욕의 파티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 리먼 사태입니다. 1990년대 이후 미국 부동산 시장은 호황을 넘어 과열에 가까울 정도로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에, 투자은행이나 사모펀드들은 부동산 자산에 기초한 파생금융상품에 엄청난 돈을 투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부동산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고, 월 스트리트의 손실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돈으로 투자했다가 손실이 나면 그냥 적자 보는 걸로 끝나지만, 차입금은 갚지 못하면 부도가 됩니다.



문제는 투자 자금이었습니다. 주요 투자은행들이 자기 자금의 30배(기업의 타인 자본 의존도를 나타내는 레버리지 비율)에 달하는 차입금을 끌어와 파생금융상품 등에 베팅했습니다. 자기 돈으로 투자했다가 손실이 나면 그냥 적자 보는 걸로 끝나지만, 차입금은 갚지 못하면 부도가 됩니다. 151년 역사에 자산규모만 6,400억 달러에 달했던 리먼 브라더스는 이 같은 투자 손실을 감당하지 못해 끝내 2008년 9월 15일 파산을 선언했습니다. 월 스트리트를 넘어 전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했던 미국의 5대 투자은행 가운데 JP모건과 골드만삭스를 뺀 3곳(베어스턴스, 리먼 브라더스, 메릴린치)이 그해 간판을 내리게 됐습니다. 사모펀드, 헤지펀드도 수없이 쓰러졌습니다. 이건 특정 금융기관의 파산이 아니라, 무모한 차입투자로 거대한 수익을 만들어냈던 월 스트리트 시스템의 붕괴였고, 미국 금융자본주의의 몰락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2년 뒤 글로벌 금융 위기의 파장이 채 가시기도 전, 또 하나의 태풍이 밀려왔습니다. 바로 재정 위기였습니다. 진원지는 유럽, 보다 정확하게는 그리스였습니다. 


리먼 사태 이후 유럽 각국은 금융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공적 자금을 쏟아 부었습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공격적으로 감행했습니다. 덕분에 금융 위기의 늪에선 비교적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지만, 시장 한편에선 ‘그렇다면 과연 재정은 안전한가’란 불안감이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유로존 17개국 가운데 재정이 가장 취약한 그리스가 1차 타깃이 됐습니다. 그리스 국채가격은 폭락했고, 추가 국채발행이 어려워지면서 국가부도 위기가 고조됐습니다. 



 ‘빚의 저주’가 남긴 교훈



유럽 전역이 재정 위기의 쓰나미에 휩싸였습니다.



금융 시장은 종종 이성을 잃곤 합니다. 한번 불안과 공포가 조성되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걷잡을 수 없이 확대 재생산됩니다. 그리스 부도 위기는 재정 형편이 열악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이른바 남유럽 PIGS(2010년 유럽 국가 부채 위기가 닥친 국가를 이르는 말) 국가로 번졌고, 유럽 전역이 재정 위기의 쓰나미에 휩싸였습니다. 


사실 유럽은 가난한 사람들이 특히 살기 좋은 곳입니다. 돈이 없어도 학교에 다닐 수 있고(무상교육), 병원에도 갈 수 있고(무상의료), 직장을 잃어도 당장 생계는 보장되며(실업수당), 은퇴해도 나라에서 돈을 주는(연금) 훌륭한 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내가 돈을 내지 않을 뿐이지,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점심값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유럽은 이 비용을 정부가 냈습니다. 물론 정부의 재정능력만 뒷받침된다면 국민에게 무료 혜택을 주는 건 기본적으로 선정(善政)입니다. 독일이나 스웨덴, 노르웨이는 경제 기반이 탄탄했기 때문에 국민에게 공짜로 퍼줘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와 이탈리아는 재정능력이 모자란 데도 빚(국가 채무)을 내면서까지 공짜 서비스를 제공했고, 결국 디폴트를 피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손을 빌리는 수모를 지금까지도 당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세계 경제의 고성장은 빚으로 만들어진 거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유럽 재정 위기는 성격과 내용은 다르지만 발생 원인을 따져보면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두 위기 모두 ‘빚이 만든 재앙’이란 사실입니다. 월 스트리트는 탐욕에 빠져 과도한 ‘차입투자’를 하다가 저 지경이 됐고, 남유럽 국가들은 분에 넘치는 안락을 위해 ‘차입복지’를 꾸려가다가 저 상황을 맞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지난 수십 년간 이어진 세계 경제의 고성장은 빚으로 만들어진 거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두 개의 위기는 그에 대한 일종의 심판이었습니다. 거품의 원인이 제거된 이상 과거 같은 고성장은 불가능하며, 이젠 저성장 체제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글로벌 금융•재정 위기를 거치는 동안에도 가계 부채를 늘리는 데 있어서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나라입니다. 정부 부채는 OECD 가입국 가운데 최저 수준이고, 기업과 금융기관들도 외환 위기를 거치며 일찌감치 부채감축과 재무안정을 달성했지만 유독 개인들만 빚에 짓눌려 있는 특이한 구조인 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세계 경제는 이제 2008년 이후 두 차례의 위기에서 벗어나 회복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위기 이전으로 되돌아가선 안 되고, 되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월 스트리트와 그리스가 남긴 교훈, 빚의 저주를 절대 잊어선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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