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전동기, 너는 나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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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론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법


누군가는 좀 무모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또 누군가는 실패했을 때의 뒷감당을 진심으로 걱정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김병권 부장은 두려움, 걱정, 책임 등의 숱한 장애물 앞에서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장애물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발전할 수 있고 그것이 곧 후배들을 위한 길이라 믿었습니다.


김병권 부장은 고압전동기 표준 모델 개발 TFT의 수장으로서, 고압전동기 표준 모델 LF 23기종 및 LT 44기종의 개발을 성공으로 이끈 주인공입니다. 현재 효성중공업은 발전·담수·석유화학·철강 등 일반 산업에 사용되는 모든 유형의 전동기를 비롯해 선박 추진용 전동기, 어뢰 추진용 전동기 등의 방산용 특수 전동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제품은 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져 반드시 신모델 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LF·LT 기종은 전체 생산량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지만, 경쟁사 대비 낮은 출력과 높은 원가로 인해 경쟁력이 부족했습니다. 특히 LT 기종은 구조가 복잡하고 표준화 비율이 낮아 주문이 들어오면 설계를 변경하거나 도면을 새로 작성하는 일이 잦았는데요. 업무 과부하는 물론 그에 따른 납기 경쟁력도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고객의 보편적 요구를 충족하는 표준 모델 개발이 시급했습니다.”


신규 개발에는 반드시 투자가 필요한 법. 문제는 투자 대비 이익이 얼마나 될지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단 한 기종만 개발하고 나머지 기종은 수평 전개를 해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비용 측면에서 부담은 덜했지만 한 기종만으로는 신뢰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을 수 있어 아쉬움은 있었죠. 현철 효성중공업 기전PU 사장님께 상황을 보고드렸더니 ‘네가 왜 돈에 신경을 쓰냐?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이지!’라고 한마디 툭 던지시더군요. 그때 머리를 한 방 맞은 것처럼 띵했습니다.”






 머뭇거리는 대신 변화를 선택한 이유


문제점을 알면서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아이디어가 있어도 예산이 부족해서, 상사가 싫어할 것 같아서, 유관 부서와의 관계가 불편할 것 같아서 주저하고 머뭇거린다면 변화는 있을 수 없죠.


“목표로 삼은 기종 개발에 필요한 연구 개발비를 전액 받았다고 했을 때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직원도 있었고, 개발이 제대로 안 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하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지금 우리가 해내지 못하면 후배들도 못한다. 결코 쉬운 도전은 아니지만 누군가 해내지 않으면 그다음 벽을 뛰어넘지 못한다. 책임은 내가 진다. 내가 책임질 수 있게 여러분이 도와달라’고 얘기했습니다.”





각 분야에서 최고의 역량을 인정받은 전문가들로 꾸린 TFT팀은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약 20명의 직원들은 각자 자기의 목소리를 냈죠. 김병권 부장은 이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지난 시간을 회상했습니다. 각자 맡은 업무가 서로 잘 맞물려 톱니바퀴 돌아가듯 만들어주는 것은 그의 몫이었는데요. 34년간 전동기 분야 외길을 걸으며 설계, 개발, 원가, 글로벌 소싱 등 여러 분야를 섭렵한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4개월 만에 1차 테스트를 했는데 실패했어요. 원인을 알면 개선하면 되는데 원인조차 알 수 없었죠. 일주일 동안 잠을 못 잤습니다. 실패 원인을 찾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얻었고, 또 그들을 모아 5일 정도 토론했는데 그때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 결과 다행히 두 번째 테스트에서는 성공했습니다.”






 30년이라는 열정의 무게





김병권 부장은 중량이 무겁고 크기가 커 원가 경쟁력이 낮았던 수평형 수냉식 LC모델 24기종과 초대형 수직형 GTV모델 4기종을 올해 안에 새롭게 개발할 예정입니다. 그가 전동기 분야에서 끊임없이 발전하며 열정적으로 일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감사한 마음이죠. 고등학교 졸업하고 효성에서 근무한 지 30년이 넘었어요. 사내 연애로 결혼했고 효성에서 받은 월급으로 아이들 대학까지 공부시켰습니다. 여기에 제 청춘이 오롯이 있는 거예요. 선배들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며 성장했습니다. 회사와 선배들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듯이 저 또한 후배들에게 돌려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오래 전부터 설계를 비롯한 업무의 세세한 부분을 기록해놓은 수첩은 김병권 부장이 가장 아끼는 애장품입니다. 전동기에 대해 후배들이 질문하면 자신의 수첩을 뒤적거리게 된다는 그. 자신이 청춘을 보낸 이곳에서 일할 수 있는 마지막 날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살겠다는 그의 말은 오래도록 깊은 여운으로 남았습니다.






글. 한율

사진. 한수정(Day40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