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의 기업들 ⑨ 천 년의 종, 새로운 영역에 닿다 폰데리아 마리넬리

 

글. 홍하상(전국경제인연합회 교수, 작가)

 

이탈리아 남부에 아뇨네라는 인구 5,500명의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에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주물 기업이 있는데요, 개업은 서기 1014 년, 이름은 ‘폰데리아 마리넬리’. 지난 세월을 오직 수작업으로 종(鐘)을 만들어왔습니다. 아르만도와 파스콸레 마리넬리 형제가 공동 소유 및 운영하는 장수 기업으로 종업원 12명에 연간 최대 50개의 종을 생산하죠. 바티칸 교황청의 모든 종을 바로 이곳에서 만듭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교황 주조 공장’입니다.

 

마리넬리는 피사의 사탑 안에 걸려 있는 종을 포함해 로마 가톨릭 교회 본부 산하에 있는 모든 성당, 수도원 등 이탈리아의 명망 있는 건축물에 설치된 대부분의 종을 납품했습니다. 그들의 대표작은 1923년에 납품한 폼페이 마리아노에 위치한 성의 종입니다. 이 밖에도 통일 이탈리아 건국 100주년 기념 종,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 기념 종,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주문한 교회 탄생 2,000년 기념 종, 뉴욕의 유엔빌딩에 있는 종 등 그야말로 다종다양합니다. 마리넬리의 종은 중국, 이스라엘, 남미, 심지어는 한국의 성당에도 납품되고 있습니다.

 

 

종의 가격은 크기와 장식 등에 따라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등 천차만별. 그만큼 고민도 많습니다. 종은 한번 구입하면 수십 년 정도가 아니라 수백 년간 쓸 수 있는 견고한 물건이죠. 깨져서 소리가 나지 않는 한 웬만해서는 교체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언제 다시 주문이 들어올지 모르는 일이죠. 새로운 주문이 들어올 때까지 수십 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기에 그동안 직원들의 월급과 기업 운영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여기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습니다. 7년 전쯤 이탈리아의 유명 전기스탠드 회사인 라문 캄파넬로와 협업을 통해 마리넬리의 종소리를 전기스탠드와 결합한 것이죠. 라문 캄파넬로는 마리넬리의 아름다운 종소리가 아이들의 심신 안정과 정서 발달에 효과가 있어서 전기스탠드를 켜거나 끌 때 종소리가 나도록 만들었습니다. 총 다섯 가지 버전의 소리가 탑재돼 있고 취침등, 장식등, 테이블 위 캔들라이트에도 마리넬리의 종소리를 적용했죠. 이 제품들은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습니다.

 

새로운 시장을 여는 방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런 기발한 조합으로 시장의 문을 두드릴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 시장은 날로 다양해지고 있죠. 이들은 종이라는 어쩌면 정체된 산업을 ‘전기’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결합해 시장 확장에 도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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