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챌린저 캄보디아편]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던 그곳 - 김상준대원

Story/효성





 





드디어 기다리던 캄보디아로 향하는 첫날.. 아침잠이 많은 저는 오늘따라 눈이 일찍 뜨였습니다. 캐리어를 들고 해준이가 사는 용산에 가서 공용짐을 들고 효성본사로 갔습니다. 공용짐 박스들고 캐리어끌고 백팩매고 가는 데 얼마나 힘들던지. 하지만 캄보디아로 갈 생각에 힘든건 싹 잊을 수 있었습니다. 효성본사에 도착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바로 여기서 우리의 김태경 대리님을 처음으로 만나 뵈었습니다. 한두번 해보지 않은 솜씨로 고기를 구워 주셔서 저와 저희 테이블 식구들은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나서 안전교육을 받고 우리는 드디어 인천공항을 향하였습니다.

처음으로 간 인천공항.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고 설레고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기념사진을 꾹 남기고 왔습니다. 저와 효진이형, 신환이. 주석이. 광현이형과 지나가는 러시아인을 붙잡고 사진찍어 달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캄보디아로 떠나는 비행기 탑승!. 의자에 있는 스크린에서부터 기내식등...국외선을 처음 탄 저한테는 이 모든게 신기할 뿐이었습니다. 가는 동안 쿵푸팬더도 보고 애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저한테는 턱없이 모자란 기내식도 먹고, 유진이하고 많은 대화를 하다보니 어느 덧 캄보디아 프놈펜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항에 내려서 입국심사를 하고 나서 처음으로 밖을 나간 순간, 밤이었지만 한국에 비하면 후덥지근 하였습니다. 하지만 생각만큼 그렇게 덥지는 않았답니다.
 
이렇게 첫발을 내딛고 저희는 여기서 저희를 인솔해 주실 천사같은 김헌,신미헌 선생님을 처음으로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어머니와 같은 인자하신 인상과 차타고 호텔에 가면서 캄보디아에 대한 간략한 소개.. 모두가 인상적이었습니다.
20분 남짓 걸려서 저희는 이제 앞으로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 지낼 호텔에 도착하였습니다.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제 눈을 동그랗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깔끔하고 컴퓨터도 있으면서 기대 그 이상이었습니다. 여기는 호텔 1층 로비입니다. 5조 식구들이 보이고 옆에는 친형같은 대리님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제 키를 받고 저와 효진이형이 묶게 될 509호방에 들어갔는 데 정말로 내가 여기 봉사활동 왔는데 이렇게 좋은데서 지내도 될 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첫날밤은 지나가고 다음날 아침해가 밝았습니다.







저희 4조는 본격적으로 쓰레기 소각장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아침 8시에 저희는 로비에 집합하여 서로 빠진 게 없는 지 확인을 하고 둘째날 활동을 할 장소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저희 4조는 프놈펜에서 가장 큰 병원인 헤브론 병원으로 향하였습니다. 도착한 순간 태워 버릴 거 같은 강열한 태양빛에 주눅이 들긴 하였지만 나혼자가 아닌 모두와 함께 한다는 생각에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처음으로 김만갑 교수님을 만나뵙게 되었습니다. 병원앞에서 잠깐 오리엔테이션을 하였는데 그때 하신 말씀 ‘이왕 여기 왔으니 열심히 최선을 다해라. 그렇게 해야지 나중에 많이 남는다 ’이 말씀이 저에 가슴에 꽉 꽂혔습니다. 그리고 저의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습니다. 20대 청춘 한번 쓰레기 소각장에 다가 한 번 걸어보자 라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의욕만큼 일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가기 전에 미리 한번 지어보지 못한 저희한테는 기초다지기부터 수평 맞추고 하는 모든 게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친절하게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습니다. 고무호스로 수평 맞추는 것부터 시작하여 추로 각 꼭지점의 높이를 맞추는 등. 간단한 과학적 원리 하나만으로 이렇게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였습니다. 수평을 맞추고 바닥기초공사를 하고 나니 점심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점심은 한국식당에서 먹었는데 땀흘리고 난 뒤에 먹는 보쌈 맛은 정말 잊을 수 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먹고나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서 2시까지 휴식을 취하였습니다. 잠깐 누워서 잘려고 하는 데 교수님이 어디계신가 찾아 봤더니 캄보디아 친구. ‘헹’과 ‘삐어르’하고 같이 쉬지 않고 작업을 계속 하고 계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차마 그늘에서 쉴 수가 없었습니다. 고생할려면 저희가 더 고생을 해야하지 쉬지도 않고 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교수님이 있는 곳으로 발길이 가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미리 지붕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저희가 해야할 것을 교수님이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교수님을 돕기 시작하다가 어느 덧 다같이 모여서 일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시멘트로 본격적인 벽돌쌓기를 하였습니다.

모두가 군대는 다녀왔지만 시멘트 바르는 거와 같은 일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많이 헤맸습니다. 교수님한테 욕도 많이 먹었고 저희가 하는 걸 보고 답답했는지 캄보디아 친구 헹과 삐어르가 직접 나서서 하고 그랬습니다. 조금은 자존심도 상했지만 언젠 부턴가 제가 직접 시멘트를 벽돌에다가 바르고 있었습니다. 점점 일이 손에 익게 되자 오늘 해야 할 목표량은 꼭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날 일이 7시가 넘어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과연 이곳 캄보디아에 있는 동안 다 끝낼 수 있을 까 걱정을 하였지만 그것도 잠시뿐. 마지막에 갈 때 저희가 오늘 해놓은 것을 보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했습니다. 서로에게 수고했다고 아낌없이 칭찬하고 있고. 이 모든 것이 그 누구 빠지는 거 없이  다 같이 땀흘리면서 고생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저희 4조 조원들끼리 느껴 보지 못했던 감동과 애정이 밀려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그날도 호텔에서 회의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쓰레기 소각장 짓기를 계속하였습니다. 오전에 6조와 함께 벽돌로 굴뚝 쌓아 올리고 소각장 전체 겉표면 미장을 하였습니다. 날이 덥다보니 시멘트가 금방 마르고 해서 시멘트를 바르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전에 햇볕이 너무 강하다 보니 기후적인 조건이 뒷받침이 안되어서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벽돌쌓아 올릴 때도 굴뚝이 높다보니 전체적으로 수평이 맞나 확인하면서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힘들면 서로 교체해 가고 자기가 해야 할 것을 남이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찾아서 하다보니 훨씬 일을 쉽고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오전에는 굴뚝도 끝까지 올리고 전체 겉표면 미장도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오후에는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페인트 칠이 남아있었습니다. 오전에 도와준 6조는 스케줄에 맞춰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저희 4조만 남아서 남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지 않게 저희조 해준이가 핸드폰을 잃어 버리고 게다가 발바닥에 못을 찔리게 되었습니다.  해준이 핸드폰이 물통에서 물에 빠진 채로 발견 되었지만 다행이 하늘이 도우셨는지 고장나지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못에 찔린 것도 다행히도 우리가 병원에서 일을 하였기 때문에 쉽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치료끝나고 온 해준이가 와서 제일 먼저 한 말 ‘늦어서 미안해’ 그리고 저와 효진이형의 땀을 수건으로 닦아주는 모습.  땀을 닦아줄 때의 모습 사소한 것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이 사소한 거 하나를 할려면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다면 결코 할 수가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전 이 모든 게 큰 감동이었습니다. 오전에 마무리 못한 미장을 마무리하고 흰색 페인트로 겉면을 칠하고 있는 도중, 비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저희는 하던 것을 멈추고 작업을 마무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의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서 비석도 만들게 되었습니다.  

 4조식구들과 멘토형, 대리님, 그리고 기아대책 간사님 이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했기에 소각장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알아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고생해서 만든 이 모든 사람의 이름 석 자를 남기고 갈 수 있게 되어서 뿌듯했습니다. 나중에 제 아들 딸과 다시 이곳을 온다면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저희는 어김없이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각조에서 한 명씩 오늘의 소감을 말하는 데 오늘은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자진에서 발표를 하였습니다. 제가 오늘 받은 감동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감동이 캄보디아를 떠나기 전까지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아까 해준이에게 받은 고마움과 그리고 자현이에게 받은 고마움. 여기와서 절 가장 많이 챙겨준 친구 였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잘 못느꼈는데 소각장을 짓는 내내 제 옆에서 물 챙겨주고 땀 많이 흘리면 소금먹으라면서 소금도 주고,  피부에 별 신경 안쓰는 저에게 와서 썬크림 꼭 바르라면서 직접 짜서 발라주고.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는 건 부모님이외에는 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던 저에게는 감동이었습니다. 자기 자신도 가누기 힘든 더위속에서 친구를 생각해 주는 마음. 그 어떤 곳에서 배우기 힘든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병원이 아닌 드디어 현지주민들이 살고 있는 까까옹 마을을 가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 온 지 3일째, 만난 캄보디아 현지인은 딱 두 명 : ‘헹’과 ‘삐어르’. 이제는 현지마을을 가게 돼서 직접 현지주민들을 만나고 어린 아이들도 만날 생각을 하니 아침에 버스타고 가는 내내 설레였습니다. 까까옹 마을에 도착하여 교수님께 저희가 보급할 정수기의 원리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오전, 오후 동안 각 가정을 돌아다니면서 정수기를 보급하였습니다. 이 마을에 와서 제가 받은 가장 큰 충격은 식수 였습니다. 한 어린 아이가 물이 받아진 항아리에서 물을 떠서 마시고 있었습니다. 어떤 물인가 해서 봤는데 그 물은 마신다는 것을 상상 조차하기 힘든 물이었습니다. 뿌연게 둥둥떠다니고 벌레들이 물위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그 물을 마신다는 것은 저한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물을 먹게 된다면 건강상으로도 큰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정수기를 보급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고 당연히 꼭필요한 거 였습니다.
              

각 가정을 돌아 다니면서 저희 소개를 하고 정수기를 사용하는 방법과 직접 정수된 물을 마셔보면서 저희가 보급하는 정수기가 이곳 주민들에게 큰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좀 더 안전하고 마음껏 물을 마셨으면 하는 바람에 정수기를 통해 정수된 물이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벌컥벌컥 마시기도 하고 맛있다는 말을 캄보디아말로 표현도 하면서 즐겁게 보급을 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저희 주위를 보니 제 손에는 어린아이들의 손이 잡혀 있었습니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저희들을 경계하고 가까이 오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부터는 저희들이 좋은 뜻을 가지고 왔다는 것을 알았는 지 저희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4조는 전에 마무리를 다하지 못한 소각장 페인트 마무리를 하러 다시 병원으로 향하였습니다. 벽면에 다시 하얀색 페인트로 바르고 30분 말린 뒤에 이제 마지막으로 저희의 발자취를 남기기 위해 로고를 칠하였습니다. 원래는 캄보디아오기전에 로고를 좀더 쉽게 칠하기 위해서 하드보드지에 로고를 파서 왔는데 그걸 그만 어제 까까옹 마을에 놓고 오는 바람에 만들어 온건 써보지도 못하고 직접 손으로 벽면에다가 밑그림을 그리고 로고를 칠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저희조 막내 지원이가 미술에 재능이 있어서 밑그림을 그리는 데 큰문제가 없었습니다. 한쪽 면 밑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 다음 벽면 밑그림을 그리는 동안 다른 조원들이 미리 그려진 벽면에 로고를 칠하는 식으로 하다 보니 좀더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지금 이시간이 소각장 작업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저희 모두는 다시 힘을 내고 있는 힘을 다해서 일을 하였습니다. 좀 더 꼼꼼하고 정교하게 하기위해서 준비해 온 붓은 사용하지 않고 손바닥을 파레트로, 손가락을 붓으로 사용하여 로고를 칠하였습니다. 마지막 완성작을 보니 정말 뿌듯하였고 그동안 3일간 고생하여 만든 소각장과 이별을 할려 하니 마음이 섭섭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고생해서 만든 만큼 이곳 병원분들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남기고 저희는 다시 까까옹 마을로 향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솔라 렌턴을 보급하였습니다. 각 가정을 돌아 다니면서 사용방법을 설명해 드리고 잘 사용하시라고 하나씩 드렸는데 어제 보다 훨씬 더 뜨거운 반응을 보여 주었습니다. 직접 사용해보시더니 밤에 애들 책 볼때 유용하겠다면서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솔라렌턴을 하나하나씩 드릴 때마다 까까옹 주민들이 보여주시는 기쁨, 고마움에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가정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 덧 저희 주위에는 어제보다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어제는 처음이라 아이들이 경계심도 있고 하였는 데 둘째 날이다 보니 아이들도 저희한테 편하게 다가오기 시작하였습니다. 렌턴보급도 하고 아이들도 놀아주고 하다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렌턴보급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드디어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시간이 왔습니다.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는 게 나을 거 같아서 수첩에 다가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씩 적어가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제 주위로 많은 아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가 수첩에다가 이름을 썼는데 잘 기억을 못하면 그아이가 제 수첩을 가져가서 펼치더니 이거라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다 보니 아이들도 저한테 이름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크놈 쭈무아 상준’이라고 말하니 아이들도 제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저한테 수첩을 한 장만 찢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 장 찢어주고 펜도 빌려주었습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쓰더니 주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배웠는 지 ‘I love'라는 말과 함께 그 뒤에는 제 이름을 써서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 사진에서 맨 왼쪽 사진은 아이들이 제 수첩에다가 한글로 자기이름을 쓰고 그 옆에 캄보디아어로 자신의 이름을 써 주었습니다. 가슴이 정말 뭉클하였습니다. 감동도 받았고 아이들의 순수함에 전 빠져들었습니다.
 
한국에 있는 아이들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때쓰고 징징대는 거 없이 정말 맑고 순수하고 의젓하였습니다. 이렇게 네 번째 날은 마무리 하였습니다. 호텔로 가는 버스안에서 내일 아이들과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울컥하는 것입니다. 대학생활동안 매말라 버린 저의 마음에 까까옹마을 어린이들은 한줄기 희망과 같은 물을 주었습니다.







까까옹마을에서의 마지막 날. 아이들과도 놀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다가왔습니다. 오전에는 학교도서관 인테리어 정리를 하였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읽을 수 있는 책들과 컴퓨터 TV, 빔프로젝트, DVD등을 설치하면서 우리가 가고 나서 아이들이 즐겁게 책을 읽고 애니매이션이나 영화 등을 보면서 즐거워할 생각에 저도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드디어 오후에는 우리 봉사활동의 하이라이트 : 마을운동회를 하였습니다. 시작하기 전에는 과연 애들이 잘 따라올 수 있을 지, 아이들과 우리가 과연 원활하게 커뮤니케이션이 돼서 잘 이루어 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걱정은 걱정일 뿐, 율동을 오프닝으로 시작을 하여 청백으로 나누어서 3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서 로테이션으로 진행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저희 팀에는 저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말을 잘 들어 주었습니다. 제 1,2,3경기 모두 다 아이들이 다치는 거 없이 안전하게 끝나서 정말 다행이었고 잘 따라와줘서 성공적으로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운동회가 마치고 이제 추억들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찍을려고 할 때 “뽀뽀”라고 하니 제 볼에다가 뽀뽀를 하면서 포즈를 취하는 사진입니다. 이곳에서 저를 가장 좋아했고 가장 친한 아이입니다. 이름은 ‘쓰리쁫’입니다.





개구쟁이 '아따요따요', 저랑 눈이 딱 맞추치면 오토바이타는 흉내를 내면서 ‘아따요따요’라고 외치던 귀엽고 활발하고 개구쟁이 친구입니다. 이름은 ‘뜨리또읏’입니다.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고나서 저희는 그동안 정들었던 까까옹마을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이제 정말로 아이들과 떠날 생각 하니 마음이 울컥하였습니다. 아이들 중에서 저랑 각별한 사이 였던 ‘쓰리쁫’ 이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입니다. 계속 저를 껴안고, 눈물이 맺혀있는 모습을 보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저도 눈물이 났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차에 탑승하여 까까옹 마을을 떠났습니다. 아이들도 너무 아쉬웠던지 저희차를 계속 따로 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딱 결심했습니다. 한국가서 꼭 1등해서 다시 이곳에 오자.라는 결심으로 아이들과 이별의 눈물을 숨길 수 있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의 일주일, 이 기간은 나한테는 그 어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이 되었다. 모든 걸  말라버리게 할 거 같은 무더위 속에서 정말 힘들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서로의 땀을 수건으로 닦아주고, 물 한방울도 서로 나눠가며 마시면서 각박하고 차가운 대학생활에서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지치고 주저 앉고 싶은 적이 한 두 번 아니었다. 하지만 나 혼자가 아니라 내 주위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정수기와 솔라렌턴을 까까옹 마을 주민들에게 나눠 줄 때 그들이 보여준 기쁨, 감동의 눈물은 내가 여기에 와 있는 이유를 더욱 분명하게 만들어 주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기술,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기술이지 않았던가.

까까옹 마을 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의 순수함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내 맘을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땀 흘리는 나에게 다가와서 내 목에 걸려있던 수건을 가지고 내 얼굴을 닦아주고 힘내라고 율동을 불러주고 솔라렌턴 보급하는 길에 나한테 다가와서 껍질 깎은 과일을 건네주는 까까옹 마을의 아이들..... 마지막 운동회가 끝나고 이제 헤어지는 시간에 눈물을 글썽이는 한 아이의 모습..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인간애였다. 이번 캄보디아 봉사활동은 땀과 눈물의 바다였다. 힘든 만큼 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고 그만큼 보람도 정말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아무런 의미없이 해왔던 봉사활동과는 다른 의미가 깊고 배울게 정말 많은 봉사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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