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효성] 100년 기업 효성, 여러분 차례입니다

효성/사람

 

 

 

 

 

애사심. 당연하면서도 어려운 이 단어를 효성 창립 때부터 효성을 떠난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바로 48년 전, 만우(晩愚) 조홍제 회장이 효성을 창립할 때 그의 곁에 있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던 정달영 회계사입니다. 48기 신입사원 2명이 효성의 창립 48주년을 맞아 그를 찾아갔는데요. 오랜 선배에게서 들은 효성의 역사 이야기는 100년 기업 효성으로 정진할 애사심을 재장전하기에 충분할 만큼 값지고 소중했습니다.



 

 


<조선예 사원(오른쪽)과 이인호 사원(가운데)이 정달영 회계사의 '효성'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A. 정달영 : 일단 고(故) 만우 조홍제 회장님의 이야기로 시작해야겠습니다. 조홍제 회장님은 제가 몸담고 있던 제일제당의 사장이셨습니다. 규모가 작은 동아제약에서 일하던 저를 직접 면접해 중견 사원으로 발탁해주셨고, 계리사(지금의 공인회계사) 자격을 높이 평가해 회계관리 일을 맡겨주신 분이기도 합니다. 

 

처음 조 회장님께서 새로운 회사를 세우신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으리으리한 반도호텔 건물에서 일하다가 불확실하게 어디로 가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는 조홍제 회장님의 기백과 용기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때가 1962년 9월, 조홍제 회장님의 연세가 56세, 저는 30세였습니다.

 

‘56세에도 새로운 사업을 하시려는구나!’ 저는 크게 감탄했습니다. 나이를 잊고 도리어 새로운 일을 해보자는 그분의 기백과 용기가 청년인 제겐 아득한 꿈처럼 묘연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조홍제 회장님 댁에서 ‘효성물산’ 출범식에 참석한 이들은 15명, 그들이 효성 그룹의 발기인 격이 될 겁니다. 제일제당 직원 수에 비해 단출했고 정식 발기인 총회도 아니었지만 이 자그마한 시작을 성공적으로 발전시켜나가자고 굳건히 다짐한, 의미 있는 출범식이라고 기억합니다. 그렇게 15명으로 시작해 오늘날 50여 해외법인, 1만 5,000여 사원을 자랑하는 효성 그룹으로 성장했음은 언제 생각해도 자랑스럽고 흐뭇한 일입니다. 

  

 

 


 


A. 정달영 : 당시 매주 월요일이면 조홍제 회장님께서 월요조회를 진행하셨습니다. 조 회장님께서는 늘 “인적 자원만 있는 우리나라는 수출제일주의로 가야 하고, 각자에게 맡겨진 본업을 성실하게 수행하면 회사도 나라도 발전할 것”이라는 취지로 훈시하셨습니다. 

 

회사를 나라의 연장선상에 둘 정도로 거시적인 교훈인 때도 있었고, 각자가 처한 부서에서 원가 관리와 공헌이익 증대, 인화단결과 위험 관리를 철저히 하라는 등의 실용적이고 경험적인 경영 철학 얘기인 적도 많았지요. 유용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월요조회의 말씀이 효성인들의 DNA가 되어 오늘날의 발전으로 이어져오고 있다고 믿습니다.

 

 

 


 



A. 정달영 : 1968년, 제가 경리과장으로 근무하던 당시 울산공장으로 전보 발령을 받았습니다. 울산공장에서 나일론 실을 생산해 출하해야 하는데, 원가 계산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었죠. 상황이 그렇다 보니 “본사 경리과장이 가서 원가 계산을 하라”는 특명을 하달 받았습니다. 

 

서울에서 울산까지, 지금처럼 KTX나 비행기로 갈 수 있었겠습니까. 트럭에 아내와 아들딸을 태우고 기본적인 가재도구 정도만 실은 채 그저 달렸습니다. 지금 제 딸이 51세, 아들이 50세인데 그때는 4세, 3세였으니 무척 오래된 일이지요. 지금과 달리 온 사방이 허허벌판이었어요. 도착해서는 베니아판으로 벽을 세운 약 23㎡(7평)짜리 기숙사에 들어가 온 가족이 함께 살았습니다. 경제인의 숙명이었지요.(웃음)

 

직접 보니 상황은 더 녹록지 않았습니다. 공장에서 실을 생산하려는데 건물이나 관리사무실도 제대로 형체를 갖추고 있질 않더군요. 낮에는 공장 직원들과 함께 삽과 청소도구를 들고 사무실 주위의 돌과 흙을 나르며 건물 주위부터 모양을 만들어나갔습니다. 온종일 그렇게 하다 저녁이 되어서야 비로소 원가 계산을 시작했는데, 작업복에 벌만 한 모기들이 수없이 달라붙어 넓적다리를 물더군요. 그렇게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불철주야 작업하기를 몇 달, 계획된 날짜에 하루도 어김없이 나일론 실이 첫 생산됐습니다. 그날 모든 임직원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제품 창고 앞길에는 화물트럭 10여 대가 대기해 차곡차곡 제품을 실어 날랐지요. 모든 이가 합심해 일군 노력의 결정체는 곧 금값으로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A. 정달영 : 제가 조석래 회장님으로부터 처음 상임감사 구두발령을 받을 때, 원칙을 지키면서도 철저하고 근면하게 일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재무 회계를 담당해온 회계사로서 숫자를 다루는 일에 대한 책임감을 크게 느꼈기에 평생 과음하거나 담배를 피운 일도 없습니다. 건강을 지키고 맑은 정신을 유지해 근태를 철저히 하여 숫자를 다룰 때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상사로부터 불합리한 요구를 받았을 때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사직을 불사하더라도 기업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으려 했죠. 그런 마음이 지금의 효성을 만든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효성인 여러분도 자신만의 원칙을 세우고 회사의 경영 원칙을 존중하며 조화롭게 업무를 수행하면 분명 효성 발전 기틀의 한 축이 될 겁니다.

 

 



<정달영 회계사의 인생 집약체 『학교종이 땡,땡,땡, 난 아직도 수업중』> 


 

A. 정달영 : 최근 효성 그룹이 TV 광고를 새로 낸 것을 유심히 보았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길에서도, 고속도로를 지나다가도 ‘효성’이라고 쓰인 간판만 보면 자꾸 그렇게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효성이 이만큼 성장했구나’ 하는 벅찬 마음이지요. 나는 창립 멤버로 효성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효성이 이룩하고 있는 눈부신 성장과 발전이 자랑스럽고 흐뭇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립 기념일을 맞이한 효성 후배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반드시 효성을 100년 기업으로 끌고 가야 합니다. 사람이 100세까지 사는 세상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효성은 기업 가치를 올려야 합니다. 사회에 공헌하는 가치도 함께 키워야 합니다. 이익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하고 이를 증대할 방안을 늘 찾아야 합니다. 외부에서 보는 효성의 모습은 이미 참으로 자랑스럽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주길 바라는 마음도 동시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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