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인터뷰_정종철] 일을 즐기는 사이 즐거워진 나의 삶

Story/효성

일을 즐기는 사이 즐거워진 나의 삶

 


‘거리 두기’가 가능한 제3자의 시선. 그것이 우리를 ‘웃음’과 마주하게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쿨’한 태도가 부른 여유의 힘입니다. ‘옥동자’와 ‘마빡이’로 유명한 정종철도 그런 과정을 거쳐 웃음에 매료됐고 이내 개그맨의 꿈을 품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웃음

 

 

개그맨을 하기 전에는 항상 제 외모에 화가 났어요. 생긴 것 때문에 홀 서빙 아르바이트를 못하고 주방에서 일한 적도 있어요. 못생겼다는 게 이유였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개그맨이 되고 나선 화가 안 나요. 오히려 감사하게 됐죠. 마빡이로 잘나갈 때는 내 키가 3㎝ 정도 더 작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그의 개그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작고 못생긴 자신의 외모였습니다. 사실 외모는 고민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요리조리 살피며 한 발짝 떨어져서 스스로를 바라보기 시작했고 곧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제까지 움츠러들어 바라봤던 세상이 달리 보였습니다.

 

 

 

 

외모는 거죽 한 꺼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내겐 다른 장점이 많다고 중얼거리게 된 것입다. 그러자 타인의 시선이 바뀌었고 이 긍정적인 마인드가 정종철을 어디에서도 기죽지 않는 희극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을 웃기면서 무겁기만 했던 콤플렉스를 생의 따뜻한 에너지로 변환시켰습니다.
 

 

중학교 때 문학의 밤 같은 행사 무대는 직접 기획하고 연출했어요. 특히 제가 서는 무대는 인기가 꽤 좋았죠.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알았거든요. 직접 <유머1번지> 등을 녹음하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려고 공부했습니다.

 


재주는 나쁘지 않았으나 순발력이 부족했던 정종철. 그래서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천천히 개그 소재를 모았습니다. 녹음기에 담긴 수백 개의 코너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수십 번을 듣고 입에 붙으면 친구들 앞에서 시연했습니다. 반응이 미지근하면 잘라내고 재밌는 것만 골라 머릿속에 영구 저장했습니다. 그 덕분에 개그맨 시험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른 경쟁자가 대여섯 개의 레퍼토리로 승부수를 띄울 때 그에게는 이미 검증된 100여 개의 레퍼토리가 있었습니다. 10여 년 동안 성실히 수행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제가 개그를 썩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려고 노력할 뿐이죠. 재미있으니까 몰입하고 몰입하니까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많은 소스를 모아서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융통성 있게 떠올릴 수 있는 건 아마도 준비된 소스 때문일 거예요.

 

 

 100일간의 도전, 몸짱으로 거듭나다

 

 

오락기 성대모사로 단번에 KBS 15기 공채 개그맨에 합격한 정종철은 ‘갈갈이 삼총사’, ‘생활 사투리’로 인지도를 높이더니 ‘마빡이’로 국민 개그맨으로 등극했습니다. 탄력을 이용해 이마와 허벅지를 반복적으로 때리는 슬랩스틱 코미디 ‘마빡이’ 역시 오랫동안 연습해온 소재였습니다. 누군가를 웃기겠다는 분명한 목적을 품고 꾸준히 노력한 대가는 늘 만족스러웠습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 꿈을 접고 냉면집 주방에서 일하는가 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이 어려워지는 등의 시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고비는 꿈을 향한 그의 막판 스퍼트를 부추겼습니다. 그래서 정종철에게 시련은 새로운 삶을 알리는 서곡이었습니다. 개그맨을 천직으로 알던 그가 사업가로 변신한 즈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업을 의도했던 건 아니에요. 2008년에 매너리즘이랄까. 이전에 해보지 않은 새로운 걸 하고 싶었어요. 뭔가에 얽매여 양질의 콘텐츠를 개발하지 못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죠. 그래서 MBC로 옮겼는데 잘 안 됐어요.

 

 

무명 시절 없이 구축해온 개그맨 정종철의 입지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10년이었습니다. 쉼 없이 달려온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렀습니다.

 

 

 

 

‘잠깐 쉴 때인가?’라고 생각할 즈음 건강에 적신호가 떴습니다. 불면과 만성피로로 병원을 찾았을 때 그는 비만으로 인한 무시무시한 결과들과 마주했습니다. 그제야 ‘뭔가 다른 일상을 계획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다이어트였습니다.
 

 

1년여 만에 몸짱으로 거듭났어요. 건강도 건강이지만 아이들이 아빠 때문에 놀림받을까봐 두려웠어요. 언젠가 큰아이와 놀러 갔을 때 어린애들이 사인 안 해준다면서 욕을 하는데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웃기는 사람’은 괜찮지만 ‘우스운 사람’은 안 된다. 그게 운동을 하게 된 강력한 동기죠.

 

 

몸짱이 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트레이너의 갖은 회유,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없었다면 아마도 십중팔구 포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힘들 때마다 ‘100일만 참아보자’며 이를 앙다물었고 이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몸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인터넷 커뮤니티를 생각했습니다. 몸짱을 위한 소통의 일환으로 공장과 연계해 다이어트 제품을 팔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게 ‘옥동자몰’은 2010년 4월에 개설됐습니다. ‘정종철도 했는데 여러분이 못할 게 무엇이냐’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는 삽시간에 대중에게로 스며들었고 ‘옥동자몰’은 이른바 대박 쇼핑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냉면집 주방 보조에서 개그맨으로, 개그맨에서 다이어트 쇼핑몰 사장으로의 변신. 참 맥락 없는 확장이다 싶습니다. 거기에 최근 두 개의 치킨 브랜드와 강남 의료기관의 병원 홍보 마케팅 사업, 아동청소년심리치료센터 허그맘 활동까지 보태면 정종철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보게 됩니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됐습니다. ‘옥동자몰’을 시작할 때 직원이 7명이었는데 지금은 70명이에요. 본격적으로 직원이 늘기 시작한 건 ‘옥동자몰’ 매출이 하루에 1억 원쯤 되면서부터였어요. 어떻게 신사업을 고르느냐고요? 그냥 제가 하고 싶고 재밌어하는, 100%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거죠.

 


단 1%의 싫어하는 기운도 사업에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하는 정종철. 그는 자기 자신을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것이 무대 위의 개그일 때 개그맨이 되고, 몸짱 관련 커뮤니티일 때 쇼핑몰 운영자가 되고, 홍보 전략일 때 홍보 마케팅 사업 대표가 되는 거라고 덧붙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업을 구상하느냐고 물어요. 답은 간단해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밀어붙여요.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고 하잖아요. 그저 제가 좋아하는 일에 매진할 뿐이죠.

 
정종철은 누군가에게 지극히 평범한 일도 그것을 좋아하는 이에겐 특별한 일일 거라고, 바로 자기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며 수줍게 웃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가 하는 일이 그리 유별나진 않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해왔으며 하고 있고 또 할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에게서 유쾌한 발상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그가 지닌 ‘좋아하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절대 명제 때문일 것입니다. 일과 놀이를 구분하지 않고 자유로이 넘나들며 몰입의 힘을 발휘하는 정종철. 그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아니, 그게 뭐가 됐든 무슨 상관일까요. ‘마빡이’가 대단해서 유쾌했던 건 아니니까요. 그냥 좋아하는 마음을 담뿍 담아 열심히 했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이것이 정종철이 우리에게 귀띔해준 유쾌한 발상으로 즐겁게 일하는 노하우입니다.

 

 

효성 임직원이 개그맨 정종철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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