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그리는 화가, 이순형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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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그리는 화가 이순형



화가 이순형은 ‘음악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합니다. 음악을 평면, 입체, 세라믹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음악은 듣고 미술은 본다’는 자명한 명제를 해체시킨 것이죠. 날 좋던 어느 날의 오후, 블로그지기는 음악을 그리는 화가 이순형을 만나 그녀의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눈을 돌린 곳곳에서 묻어나는 음악에 대한 애정을 듬뿍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시간을 여러분과 조금 공유하고자 합니다. 


경기도 광주시 목현동의 어느 산길을 올라가면 화가 이순형의 작업실 ‘더무지치’가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목판에 새긴 피아노, 세라믹 위에 수놓은 음표, 캔버스에 그린 여러 음악적 요소가 시선을 사로잡는데요. 밝고 화려한 색채와 함께 음악과 미술을 아우른 그녀의 작품들이 한데 어우러져 작품실이 아니라 즐거운 하모니를 연주하는 공연장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무지치(Musici)란 

이탈리아어로 ‘연주자들’이란 뜻. 이곳은 음악에서 모티프를 구해 그림으로 표현하는 그녀의 작품 세계가 오롯이 담겨 있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무지치



“아버지가 큰 과수원을 일군 부농(富農)이었어요. 덕분에 과수원이 제 놀이터였죠. 싱그러운 아침 공기와 향긋한 과일 냄새는 여전히 생생해요. 특히 끝없이 펼쳐진 과일나무의 형상, 메마른 대지를 적시던 물길의 흐름은 마치 하나의 예술 작품 같았죠. 어릴 적 과수원에서의 경험이 제 예술적인 감수성을 키운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일까요? 피아노 건반 위에 춤추는 나비, 음표를 따라 흐르는 새, 첼로 끝에 매달린 물고기 등 그녀의 작품을 보노라면 어린 시절의 동심이 떠올랐습니다. 풋풋하고 순수한 동심과 음악적 선율이 만나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만드는 것 같았는데요. 이처럼 음악을 사랑하는 화가 이순형이 음악의 매력에 푹 빠진 건 초등학교 때라고 합니다.

 


음악으로 그리고 미술로 노래하네



음악을 그리는 화가 이순형



“초등학교에 가서 클래식을 처음 접했어요. 입학식 때 녹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던 ‘위풍당당 행진곡’, 운동회 매스게임의 배경 음악이었던 드보르자크의 ‘유머레스크’, 해 질 녘 학교 음악실에서 나오던 트럼펫 소리…. 집에서 듣던 대중가요와는 전혀 다른 느낌에 충격을 받았죠.”


화가 이순형의 클래식 음악 체험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그녀는 1998년에는 KBS 클래식 FM <나의 사랑, 나의 음악>의 진행을 맡을 정도로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는데요. 그러나 음악은 음악일 뿐, 그녀 본연의 업은 화가였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줄곧 미술적 재능에 소질을 보이며 자연스레 화가로서의 길을 걷던 그녀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미술로 표현한 건 두 딸아이 때문이라고 하네요.


“첫째는 바이올린, 둘째는 비올라를 했어요. 아이들이 집에서 연습을 많이 했죠. 그런데 바이올린과 비올라 선율이 참 아름다운 거예요. 매일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음악은 자연스레 생활이 됐고 이에 영감을 받아 그림으로 표현했죠.” 


그때부터 그녀는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05년 국립합창단과 함께한 <헨델 메시아에의 은유전>이 문화적 이슈가 되면서 ‘음악 그리는 화가’로 불리게 됐습니다. 



음악과 그림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동행



음악을 그리는 화가 이순형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화가 이순형의 작품은 그 동안 대규모 프로젝트를 통해 빛을 발했습니다. 


음악을 그리는 화가 이순형



그 동안 그가 참여한 프로젝트는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습니다. 블로그지기는 그녀에게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고생을 가장 많이 한 <2009통영국제음악제>예요. 통영시를 모두 제 작품으로 수놓았기에 물리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노력한 만큼 보람도 컸습니다. 통영의 푸른 앞바다를 무대로 프린지 홀을 세우고 페스티벌하우스에 작품 옷을 입히며 행사를 성공적으로 연출해 참 뿌듯했어요.”


그녀는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축제인 <2009통영국제음악제>의 환경디자인 총연출을 담당해 도시 전체를 작품으로 감싸며 음악적 메시지를 입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이와 함께 특별전 <음악미학, 윤이상 날다>를 열어 통영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의 음악세계를 미술작품으로 조명했죠.  

 


이순형 작품들



이렇듯 그 동안 굵직굵직한 행사를 기획하고 작품을 만들며 쉼 없이 달려온 그녀는 얼마 전부터 자신의 재능을 나누는 것에 관심이 커졌습니다. 그녀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도 광주시는 그녀가 재능 기부를 하는 중심부. 지역적으로 문화예술을 접하기 힘든 가정이나 다문화가정, 경기도 지역의 장애인을 위해 음악을 들려주고 그림으로 표현하는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음악과 미술적 재능을 나누는 일을 찾다가 동참하게 됐어요. 폐품에 곡물을 넣고 소리 내기, 손바닥에 물감을 묻혀 자유롭게 표현하기 등 예술을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프로그램을 즐기는 이들을 보면 저 역시 행복합니다.”


이 외에도 그녀는 서울시여성가족재단과 함께 <동물 환상곡으로 펼치는 상상그림축제>를 열어 문화체험이 취약한 복지시설 어린이에게 재능을 기부했으며, 청송사과축제 중 열린 <사과밭 주인과 화가전>에 재능 기부 형태로 참여해 작가와 농민이 함께 어울리는 장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순형 작가는 앞으로도 예술을 통해 따듯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음악을 그리는 화가 이순형



“경제적인 풍요 이면에는 내면의 갈등과 소외로 어려움을 겪는 분이 굉장히 많아요. 문화체험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시설의 아이나 장애인에게 전시와 공연, 놀이 활동의 기회를 제공해 감성을 일깨우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 


그녀가 바라는 재능 기부는 거창하지 않습니다. 그저 따뜻한 마음으로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그 마음을 행한다면 그걸로 충분할 뿐입니다. 음악과 그림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동행을 보여주는 화가 이순형. 그녀와의 만남의 짧았지만 그녀와의 인연은 길게 이어지길 바라며, 그녀가 걷는 그 길에 따뜻한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