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한 권] 싱숭생숭 봄날, 책으로 떠나는 여행

Story/효성



싱숭생숭 [부사]

마음이 들떠서 어수선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이 갈팡질팡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 유의어: 시룽새룽

- 옛말: 싱슝샹슝 / 방언: 심숭샘숭


밤이 길어 더 추웠던 겨울, 정말로 다 지나갔습니다. 춘분날에 밀려 저만치로 물러났습니다. 흙이 따숩고 말랑해진 걸 보니, 겨울은 땅이 아니라 하늘로 날아갔나 봅니다. 요사이 꽃샘추위는 겨울의 비행운이었는지도 몰라요.


웬 손발 오그라드는 감상인가 싶으시죠. 다 봄 탓입니다. 싱숭증(마음이 들떠서 싱숭생숭한 느낌이 드는 증세) 영향입니다. 낮이 더 길어지는, 출퇴근길이 어둡지 않은, 밝고 따뜻한 시간들이 많은 봄날 때문입니다.


봄앓이(봄 날씨에 마음이 싱숭생숭하여 괴로워 하는 일)에 잘 듣는 특효약이 여행이라면서요. 한데 떠날 수가 없으니 그저 끙끙 앓을 수밖에요. 그래서 준비해봤어요. 몸살 걸렸을 때 덮는 두툼한 이불 같은, 봄앓이 진정시켜줄 여행책 몇 권을요.




 『퇴근하고 강릉 갈까요?』 그럴까요? 그래도 될까요?



출처: 알라딘



“네!” 하고 대답할 뻔했습니다. 회사에 내일 하루 연차를 내볼까도 생각했습니다. 간신히 도리질을 하고는(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많아서..) 우선 책부터 펼쳐봅니다.


인터넷에 나오지 않는 곳을 찾아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현지 사람들 또는 그들만큼 동네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책 소개의 한 구절입니다.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좀 더 페이지를 넘겨봅니다. 강릉을 잘 아는 이들이 현지 여행지 여러 군데를 골라준 책이네요. 이들을 이 책은 ‘로컬 큐레이터’라 부릅니다. 박물관이나 갤러리 큐레이터처럼, 강릉 곳곳을 독자들에게 큐레이팅해주는 사람들입니다. 로케이션 매니저란 직업을 가진 김태영, 영화감독 조성규가 바로 이 책의 로컬 큐레이터들입니다.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 선교장에서의 1박 2일 한옥 스테이, 근방의 명소들(사천 해변, 옥계, 심곡 등) 여행 루트가 세심히 소개돼 있습니다. 드라이브 코스와 서핑 스팟은 나만 알고 싶을 만큼 요긴합니다. 강릉에서 하루 묵으며 돌아다녀볼 계획을, 이 책 덕에 세워볼 수 있겠습니다.




 쉼표를 찍었다, 『지구 반대편 당신』이 보였다



출처: 알라딘(/)



시인이 여행을 하면 무엇을 보고 기록할까. 이런 호기심이 이는 책입니다. 시집 『평일의 고해』를 쓴 시인 정영의 여행 산문집이고, 초판 제목은 『때로는 나에게 쉼표』였습니다. 


나날이 착착 돌고 도는 무난한 하루, 이 와중에 어긋난 톱니바퀴처럼 쳇바퀴를 잠시 멈추게 하는 생각들(난 잘 살고 있는 걸까, 난 행복한 걸까, ···). 이런 순간에 우리는 우리 삶을 가만히 읽게 됩니다. 설혹, 마침표를 어디에 찍어야 할지 모르겠는 만연체 같다고 느껴질 때, 『때로는 나에게 쉼표』라는 제목은 퍽 든든합니다. 마침표 말고, 일단은 쉼표부터 내 삶에.


여행 산문집으로는 드물게, 이 책 안에는 국내외 여행지가 섞여 있습니다. 베트남 북부의 소수민족 마을을 여행하는가 하면, 어느새 경기도 가평 유명산에 와 있는 여행책입니다. 발길 닿는 대로, 까짓것 국경 정도는 훌훌 넘는 자유로움이 이 여행 산문집의 매력입니다.




 먹고 감상하고 걸으러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



출처: 알라딘



『지구 반대편 당신』과는 반대로, 이 책은 여행지 한 곳을 한 발 한 발 밟아 나갑니다. 저자는 일본의 소도시 다카마쓰에서 한 달간 살며 갖가지 것들을 기록했습니다.


책은 3개 파트로 구성돼 있는데, 각 소제목이 ‘푸드 테라피’, ‘아트 테라피’, ‘워킹 테라피’입니다. 셋 다 ‘테라피’가 들어가 있네요. 책은 다카마쓰를 “미식과 예술, 자연의 도시”라 소개합니다. 다카마쓰에선 먹고(푸드·미식) 감상하고(아트·예술) 걷는(워킹·자연) 일이 고스란히 테라피가 된다는 알림 같습니다.


지역 한 군데만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노정입니다. 현지에 살면서 경험한 것들이 기록돼서인지, 여행이기보다는 여행 같은 일상처럼 다가옵니다. 하기야, 많은 여행기들은 사실 ‘여행지에서의 일기’ 아니던가요. 잠깐 떠났다 돌아오는 일탈 말고, 시간을 두고 푹- 머무는 여행적 일상이 간절한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언젠가, 아마도』 슬쩍 혹은 훌쩍



처: 알라딘



소설가 김연수가 쓴 여행 산문집입니다. 앞서 만나본 시인 정영의 『지구 반대편 당신』처럼, 국내외 여행지들이 페지이들마다 부려져 있습니다.


전라남도 여수와 순천만을 거닐던 소설가는 별안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로 날아갑니다. “두바이에서는 나도 만수르인 양”이라며 호기를 부리더니, 이제는 중국 하얼빈이고 또 얼마 지나서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파두(Fado)를 듣고 있습니다. 


딱히 계기라 할 것 없이 슬쩍 떠나고 훌쩍 떠도는 노정입니다. 굳이 첫 장부터 읽지 않아도 되는 구성이랄까요. 손에 잡히는 대로 페이지를 펼쳐도 ‘출발’ 같은 느낌이 듭니다. 또 하나, 이 책의 소소한 재미는 교통편에 대한 묘사입니다. 택시와 버스, 비행기 이코노미석 등에 대한 소설가의 애착(?)이 여행 현지의 볼거리나 먹거리 못지않게 재미있습니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낫지 않고 싶다



출처: 알라딘



2년에 한 번 사표를 쓰고 여행을 다닌 사람이 일곱 번째 사표를 쓰고 여행을 다니며 쓰고 찍은 기록입니다. 일곱 번째 사표는 앞선 여섯 사표들과는 달랐다고 합니다. 퇴사 7회차에 이 사람은 집, 차, 가구를 다 처분하고 북미행 비행기를 탔다고 합니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상상해봤음직한 반란(?) 아닐까요. 저자가 왠지 혁명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첫 장을 넘기자, 저자를 향한 경애심이 얼마간 수정됩니다.


Seoul to North America_지금, 나는 나로부터 가장 먼 곳으로 간다


서울에서 북미로 떠나는 저자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어쩌면 혁명가가 아니라, 구도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와 함께할 여행은 ‘나를 찾으러 떠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나를 비우러 물러나는’ 여행이 시작되려는 것이지요.


이곳을 가세요, 이것을 드셔보세요, 이렇게 하세요, 같은 친절한 정보 제공은 이 책에 없습니다. 여행의 목적이 나를 비우는 것이므로, 아래와 같은 문장들을 자주 만나시게 될 거예요.


낯선 곳에서 길을 잃게 된다면 자신이 잃어버린 정보에 집착하기보다는 

그곳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것들에 대하여 여유로운 마음으로 침착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는 일,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이 준비한 정보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일 테니까.




 앓음답다, 봄


소설가 박상륭은 ‘아름답다’를 ‘앓음답다’로 표기합니다. ‘앓은 사람답다’, ‘앓아본 사람이 아름다움을 안다’라는 뜻이에요.


매년 하는 봄앓이, 면역될 법도 하지만 어김없이 또 앓습니다. 따뜻하니까, 꽃이 피니까, 낮이 기니까, 기꺼이 앓고 또 앓을 수 있는 계절이 봄인 것 같아요.


 

여행책 펼치고 봄앓이, 나앓이 어떠세요?



여행책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여행 팁’뿐이 아니죠. 나를 채우고 비우는 법을 알아가게 될지도 몰라요. 봄앓이 하는 김에 ‘나앓이’도 해보면 어떨까요. 지금 자기 세계의 저자는 ‘나’일 테니, 깊이 앓고 나면 삶도 조금은 변해 있지 않을까, 굳이 떠나지 않아도 떠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두근두근 ‘나’를 기대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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