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적정기술 봉사단 '효성블루챌린저' 맞춤형 적정기술 보급_캄보디아 Story

Story/효성


 



 

l 다시 캄보디아로…

“좀리업 수어(처음 뵙겠습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합장을 한다. 캄보디아식 인사법이다. 반가운 인사로 캄보디아 까까옹 마을에서 ‘효성 블루챌린저’의 2차 활동이 시작됐다. 1월말에서 2월초까지 일주일간 학생봉사단 5명과 멘토, 국제구호 NGO인 기아대책의 간사 및 현지 선교사들이 참여했다.

우리가 이 곳을 다시 찾은 이유는 작년 8월 봉사활동을 통해 느낀 점과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까까옹 마을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제품을 발명해 이를 보급하기 위해서다. 이번 활동에서 블루챌린저가 보급한 발명품은 초기빗물을 걸러주는 ‘아이레드(IRED: Initial Rainwater Elimination Device)’다. 이름만 보면 첨단제품 같은 느낌이지만 간단한 과학적 원리와 최적화 실험을 반복해 만든 적정기술 제품이다. 오염된 식수가 유발하는 수인성 질병이 많은 캄보디아에 꼭 필요한 장치다.

 

<사진1. 효성블루챌린저 박광현 대원과 최환묵 대원이 캄보디아 아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레드를 만들고 있다>



상수도 시설이 없고 우물도 귀한 캄보디아에서는 우기 때 빗물을 받아 마시는데, 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빗물을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처음 얼마간의 시간 동안에는 지붕에 있던 흙먼지와 이물질이 빗물과 함께 흘러내려와 오염된 물이 저장된다. 초기 빗물에 포함된 이물질은 물을 쉽게 상하게 해서 3~4일이 지난 물을 마시면 장염이나 발열 등의 질병에 걸리기 쉽다. 지붕을 이용하지 않고 그대로 빗물을 받아도 대기중의 먼지와 이물질이 포함되기 때문에 깨끗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l 블루챌린저 캄보디아 팀의 야심작 ‘아이레드’ 개발

                <사진2. 아이레드 작동 원리>




아이레드는 부력을 이용한 초기 빗물 거름장치다. 화장실 양변기에 일정량의 물이 차는 원리를 생각하면 쉽다. 지붕이나 공중에서 떨어진 빗물은 우선 철망에서 나뭇잎 등 큰 부유물이 걸러진 채로 아이레드 안으로 들어간다. 더 이상 불순물이 없어질 정도가 되면 내부에 있는 플라스틱 공이 떠올라 아이레드 내부를 두 공간으로 나눔으로써 초기 빗물과 나중에 떨어진 깨끗한 빗물을 분리하게 된다.




<사진3. 아이레드 개발의 모티브가 된 대형 빗물 거름 장치: 까까옹 초등학교 학생들의 급식수 공급 용도로 사용된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지난 8월 까까옹 초등학교에 아이레드와 비슷한 원리로 대형 빗물 거름장치를 설치한 블루챌린저는 귀국 후 일반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소형 집수장치 개발에 들어갔다.

효성 블루챌린저는 개발에 앞서 캄보디아의 물 사정에 대한 조사를 먼저 했다. 캄보디아는 세계 전체를 놓고 봐도 매우 큰 규모인 4,400여km의 메콩강이 흐르지만 식수 사정은 열악하다. 우기에는 빗물을 받아 먹을 수 있어 그나마 낫지만 비가 한 달에 한번 내릴까 말까 하는 건기 때는 강물을 떠다 끓여먹어야 한다. 그래서 집집마다 대형 집수 항아리가 있다. 한국 돈으로 2만원 정도 하는 집수 항아리는 물을 저장하고 불순물을 침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집수 항아리가 없어 불순물을 침전시키지 않은 채로 물을 마실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국제구호 NGO인 기아대책에서는 학생들의 교육과 함께 집수항아리 보급에도 주력하고 있다.


 

        <사진4. 블루챌린저 캄보디아 팀의 고민이 그대로 담긴 아이레드 설계도>




블루챌린저가 제품 개발에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기존에 현지인들이 사용하던 집수항아리는 그대로 사용하고 번거로운 작업 없이 단순한 작업으로 여과장치를 추가하는 것이었다. 소득 수준이 낮은 캄보디아 현지 상황을 고려해 제작 단가도 낮춰야 했다. 제품 설계도를 만들 때는 생소한 3D 그래픽 프로그램을 유투브 영상을 통해 배워가며 밤을 지샌 날도 많았다. 설계도가 완성됐어도 난관은 많았다. 대량생산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업사에서 학생들이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을 제시했다. 학생들 수준에서 감당할 수 없으면 현지인들도 가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단가를 낮추기 위해 여러 공업사를 다니며 발품을 팔았다. 고장이 났을 경우 현지인들이 스스로 쉽게 고칠 수 있도록 불필요한 부품은 모두 제거했다. 수많은 합숙과 회의, 반복되는 분해와 조립, 철야 작업 등의 고된 과정을 거쳐 드디어 아이레드의 프로토타입이 완성됐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개발한 아이레드 시제품을 적정기술 공모전에 출품하는 날이 다가왔다. 효성 본사가 참 익숙하게 느껴졌다. 블루챌린저 선발 면접, 발대식 등을 이 곳에서 치렀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한 여러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팀도 많은 노력을 한 것 같았다. 드디어 결과 발표시간, 베트남팀의 연기 안 나는 화덕인 블루스토브와 함께 지난 5개월 동안 우리를 괴롭힌 아이레드가 적정기술 보급품으로 선정됐다. 무엇보다도 기뻤던 점은 작년 8월 눈물로 작별을 한 까까옹 마을 사람들과 어린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제품 사각형으로 바꾸고, 내구성을 강화하기 위해 재질도 금속으로 바꿨다. 예쁜 물건을 좋아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해, 디자인도 심플하지만 단아하게 바꿨다. 제품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막상 캄보디아에 도착하니 한국과는 너무 사정이 달라 난감했다. 캄보디아는 인구 1,500만에 국토도 남북한 합친 면적의 80~90% 정도의 규모인 나라지만 사출(플라스틱이나 철 등을 원료로 한 제품의 틀을 뽑아내는 것) 시설이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다. 수도인 프놈펜에서도 적합한 재료를 구하기 힘들었고 생각보다 단가도 비쌌다. 제작 단가가 개당 4만원 정도 나왔는데, 단가를 더 낮춰야 하는 문제가 숙제로 남았다.

물 문제로 고생을 하고 있는 까까옹 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제품 개량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물을 마신 것이 탈이 났지만 가난한 살림 탓에 돈을 빌려서 치료를 받은 니알니응 아주머니(54세), 상한 빗물을 마시고 설사로 고생했던 펄라씨 댁 둘째 딸 쏘니싸(6세) 등의 사연이 정수기 개량에 박차를 가하도록 했다. 이렇게 탄생한 정수기를 본 마을 주민 펄라씨는 설명을 듣고 처음에는 동물 기르는 케이지인 줄 알았지만 사용법 설명을 듣고 매우 놀라며 고마워했다. 펄라씨의 아내 짠투씨도 아이들을 안고 연신 미소를 지었다. 그 동안의 노고가 한 순간에 없어진 순간이었다.



ㅣ처음엔 낯설었지만 고향과도 같아진 캄보디아 까까옹 마을

효성 블루챌린저가 지난해 8월 캄보디아에 처음 갔을 때는 낯설음을 금치 못했다. 나무로 지어진 높은 집과 야자, 바나나, 코코넛, 망고 나무로 둘러 쌓인 마을 환경과 생소한 언어 등 우리나라와 환경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캄보디아 전통 가옥은 우기 때 홍수를 피하기 위해 보통 2층에 주거 시설이 있다. 기둥을 높게 해 계단으로 오르내린다. 나무 집 착공에 들어가면 통상 하루나 이틀이면 집이 완성된다. 이사도 간단하다. 벽 등을 떼어내고 마을 사람들 여럿이 집을 통째로 들어서 옮긴다.

 


               <사진5. 캄보디아 전통가옥 건축현장>



블루챌린저 멤버들의 마음을 녹인 것은 마을 아이들이었다. “안녕하세요”도 할 줄 알고 “사랑해요”도 할 줄 안다. 절대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법이 없고 사탕이라도 하나 받으면 두 손을 모으고 감사 인사를 잊지 않는다.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함에 블루챌린저 학생들은 모두 동심으로 돌아갔다. 한국보다 더운 날씨에 지칠 법도 하지만 아이들과 놀아줄 때면 하루의 피로가 깨끗이 사라졌다.


  

                <사진 6. 말은 통하지 않아도…>



카메라가 없는 탓에 휴대폰에 자기 얼굴이 찍히면 매우 신기해 한다. 워낙 순진한 아이들이다 보니 보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사진7. 휴대폰에 찍힌 본인의 모습을 보고 신기해 하는 까까옹 마을 어린이>




ㅣ 남은 숙제, “건기에도 깨끗한 물을 보급하라”

            <사진8. 김만갑 교수가 개발중인 이중 정수 시스템>



아이레드의 한계는 우기에만 적용되는 제품이라는 것이다. 블루챌린저 대원들은 아이레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지에서 적정기술을 연구하고 있는 김만갑 교수의 작업장을 찾아 새롭게 개발 중인 건기용 빗물 정수 장치에 대해 공부하는 등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ㅣ 인류를 사랑하는 한국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캄보디아에 가서 느낀 것은 생각보다 우리나라 광고판이 많다는 것이었다. 프놈펜 시내에서유명 전자기업들의 광고판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물론, 의류회사, 금융회사도 있었다. 현지 체류 중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 제품의 선호도가 높다고 한다.

 

          <사진9. 캄보디아 사람보다 더 캄보디아 사람 같은 신미경 선생님>



하지만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 곳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다는 것이다. 기아대책 소속의 김헌-신미경 선교사 부부도 그 중 한 사람들이다. 캄보디아에 온지 8년째인 그들은 까까옹 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친 자식처럼 아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김헌 선교사는 겉으로 보기에도 건강이 좋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구김살 없는 표정으로 항상 즐겁게 일을 한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캄보디아 사람들과 어린이들을 너무 사랑하게 때문에 이들과 평생 함께하고 싶다고 한다. 친 딸을 외국인 고등학교에 보낼 학비가 부족해, 결국 검정고시를 치르게 했음에도 김헌 선생님(현지에서는 선생님으로 부른다) 부부와 자녀는 항상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 요즘 월 3만원씩 각 구호단체에 내는 1:1 후원이 많은데 캄보디아에 와보니 이런 돈이 어떻게 쓰이는 줄 알 수 있었다. 



ㅣ 다시 일상으로…

         <사진10. 까까옹 마을 어린이들의 미소는 자연을 닮았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평소 일과를 마치고 숙소로 복귀할 때 해맑게 웃으며 손만 흔들던 아이들이 분위기가 이상하다. 블루챌린저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 이제 다시 만나기 힘들 것을 아이들은 느끼나 보다. 손을 잡고 매달려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야 했다. 블루챌린저 대원들을 태운 미니버스가 출발하자 아이들이 뛰어서 버스를 쫓아오기 시작한다. 한 동안 아이들의 미소가 눈에 밟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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