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osung Blogger] 모모리의 여행이야기(9) 예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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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여행’을 하기란 쉬울지 모릅니다.
볼거리가 많기로 유명한 곳을 가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신나는 액티비티를 실컷 즐기고 난 후에 ‘아, 이번 여행은 정말이지 재미있었어!’라고 만족스런 감상을 내놓기란 돈만 있다면, 정말이지 돈만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예쁜 여행’을 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돈만으로는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예쁜 여행’이라 함은 ‘예쁜 마음’이 함께 따라오지 않는다면 불가능하기 때문이지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예쁜 여행을 하는 프랑스 커플을 만났습니다. 발리섬의 우붓이란 곳에서 같은 숙소에 머물렀다는 것이 그네들을 만나는 인연이 되었지요. 우붓에 모인 많은 관광객이 오늘은 무엇을 할까, 무엇을 먹을까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느라 바쁜 와중에 이 커플의 여행법은 좀 남달랐습니다.




                             한적한 농촌 풍경이 쳘쳐지는 예술의 고장, 우붓




그들은 숙소 주인 내외의 사진을 여러 장 찍어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심사 숙고하여 골랐고, PC방에 가서 포토샵으로 다시금 정성스레 몇 시간 동안 보정/편집 작업을 하고는 인쇄를 거쳐 액자에 담았습니다. 액자를 고르는 시간은 또 얼마나 길었는지요. 그들과 그날 하루를 함께 보내기로 약속했던 저는 조금 심통이 납니다. 여름 휴가를 받아 떠나온 발리, 기껏해야 일주일 남짓한 기간인데 반나절을 PC방에서, 액자 가게에서 보내고 있으려니 날아가는 시간이 한없이 아까웠던 게지요.

프랑스 커플이 건넨 사진이 담긴 액자를 받아 든 숙소 주인 내외. 그들은 수십 년 째 여행자를 위한 숙소를 운영해오고 있지만 그런 선물은 처음 받아본다며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이미 고인이 되어 그리움으로 남은 그들 부부의 부모님 사진 옆에 나란히 걸어 두겠노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살짝 눈물을 비치기도 했고요.





              숙소 주인 아주머니가 프랑스커플이 건네준 남편의 사진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날 아침 숙소 주인 아저씨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하혈을 했습니다. 최근 들어 벌써 몇 번째라 했지요. 예쁜 여행을 하는 프랑스 커플은 주인 아저씨에게 '별 일이야 없겠지만 꼭 병원에 가보시라'고 전했고, 주인 아저씨는 '알았다'고 했지만, 실상 예쁜 여행을 하는 프랑스 커플은 '암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중이었고, 주인 아저씨는 병원에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지요.

선물로 건넨 사진이 얼마 안 가 영정 사진이 되면 어쩌나, 그래서 고인이 되어 버린 그들 부모님 사진 옆에 마찬가지로 고인이 되어 나란히 걸리면 어찌하나, 불길한 생각이 스치며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말이지요. 설령, 만에 하나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정성이 담긴 쓸만한 사진이라도 한 장 있는 것이 다행이다 싶기도 했습니다.

옆에서 멀뚱멀뚱 지켜보며 반나절을 보낸 내게 미안해진 걸까요? 프랑스 커플은 마사지샵으로, 맛있는 음식점으로 이리저리 나를 안내합니다. 여행자가 다른 여행자를 챙기는 모습이라니요. 2인용 모토바이크에 제가 함께 탔다가 걸리는 바람에 딱지를 떼기도 했지만 그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싱글벙글입니다. 예쁜 마음과 더불어 쿨(cool)함을 겸비한 커플입니다.



 

                            파도가 적당한 발리의 꾸따 해변은 서퍼들의 천국




여름은 벌써 지났고 가을도 어느새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지만, 프랑스 커플이 건네준 우리가 함께 찍은 (심사 숙고해서 고르고, 포토샵으로 보정 후 인쇄를 거친) 사진은 제 방에 여전히 현재형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올 여름 일주일 남짓의 발리 여행에서 유독 그 날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재미있는 여행’을 했던 날이기 때문이 아니라 ‘예쁜 여행’을 목격한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이라는 것은 나에게 특정 장소를 마음껏 경험시키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이와 반대로 베풂을 통해 나를 특정 장소(또는 특정 장소의 사람들)에게 경험시켜주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어쩌면 후자의 여행이 진정한 여행 고수의 여행법에 더 가까운 건지도 모를 일이고요.





                더위에 지쳐 걷고 있던 나를 향해 '평화'의 손짓을 선물하던 발리의 아이




‘아, 이번 여행은 정말이지 뿌듯하고 행복했어!’

예쁜 여행 후 만족스런 감상을 내놓는 여행도 좋겠습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효성)에서는 올해부터 여름 휴가를 일년 중 아무 때나 다녀올 수 있도록 직원들을 배려하고 있는데요. 내년에는 설레는 봄이나 고즈넉한 가을 즈음에 [예쁜 여행]을 찾아 떠나봐도 좋겠다고 생각하며 저는 벌써부터 내년도 배낭 여행지를 마음으로 고르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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