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퇴근길은 시네마 설국’ 눈 오는 날 보고픈 5편의 영화

인사이트/라이프



오늘이 일 년 중 가장 눈이 많이 내린다는 절기 ‘대설(大雪)’입니다. 이런 날이면 일기예보와는 상관없이 괜히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죠. 구름이 회색 빛으로 무겁게 내려앉기라도 했다 하면 혹시나 눈이 내리진 않을까 하고 기대를 하게 됩니다. 


사실 어릴 때만큼 눈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진 않는데요. 어릴 땐 눈이 내렸다 하면 밖으로 뛰어나가 눈싸움이며 눈사람 만들기 등 뛰어놀기 바빴는데, 이제는 출퇴근 길을 걱정하게 되는 게 현실입니다. 게다가 눈이 내린 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일기예보가 나왔다 하면, 다음 날은 적어도 20분은 먼저 집에서 나와야 한다는 소리가 되는 거죠. 


이런 내가 너무 낭만이 없어진 건 아닌가 문득 서글퍼지셨다면, 겨울 영화로 감수성을 조금 채워보시는 건 어떨까요? 화면 한가득 흰 눈이 쌓인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 눈을 보며 설렜던 그 마음을 다시 상기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눈 덮인 바다를 걷고 싶게 만드는 영화 <이터널 선샤인> 


눈과 가장 어울리는 장르는 아무래도 로맨스 아닐까요? ‘영화평론계의 유재석’으로 불리는 이동진 평론가가 “지금 내게 사랑 영화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평과 함께 10점 만점의 평점을 준 것으로도 유명한, 판타지 로맨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인은 많은 사람들이 ‘인생영화’로 꼽는 로맨스 영화의 걸작입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어찌 보면 권태롭기까지 해 보이는 남자 조엘(짐 캐리)과 머리카락 색깔만큼이나 톡톡 튀는 여자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은 외모만큼이나 다른 성격 탓에 자주 충돌하는 연인입니다. 어느 날 심한 다툼 이후 화해를 하고자 그녀를 찾아간 조엘은 자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는 클레멘타인을 보고 큰 실망과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요. 그녀가 잊고 싶은 기억만 선택해 지워준다는 라쿠나 사의 서비스를 통해 자신에 관한 모든 추억을 지웠다는 것을 알게 된 조엘은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역시 클레멘타인과의 기억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 그녀와의 행복했던 추억들을 다시 돌아보며 자신이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조엘. 영화는 기억을 삭제 당하지 않기 위해 조엘의 기억 속에서 숨고 도망치며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기억을 잃지 않지 위해 자신의 기억 속에서 도망을 다닌다는 설정이 참 독특한데요.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보았을 스틸컷, 눈 덮인 해변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모습 역시 망각되지 않기 위해 도망 다니는 과정 중 하나입니다.


 

출처: Daum 영화


영화적 배경이 겨울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차가운 느낌을 자아내지만, 눈과 함께하는 연인의 모습만큼은 따스합니다. 특히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해 나가려는 연인의 마음이 노래 가사로 표현되고 함께 눈 밭 위를 걷어나가는 마지막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며 최고의 엔딩 장면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서로가 싫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너무 다른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는 조엘의 모습, 한번쯤 이별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데요. ‘연인들의 계절’은 점점 다가오고, 슬그머니 옛 연인이 그리워지는 분이라면 이번 주말 한번 감상해 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다만 그 후 감상에 젖어 ‘자니?’하고 보내는 문자는 극심한 후회를 초래하오니 유의하시고요. 



 눈을 감고 내면을 봐요 <뷰티 인사이드>


<뷰티 인사이드>는 계절이 전면에 부각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는 배경이 겨울인 탓에 등장 인물의 의상이며 영상의 색감 등에서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을 자아내는 영화입니다. 뒷이야기이지만 이 영화 개봉 당시 여주인공인 한효주의 겨울 패션이 너무 예뻐서 관련 키워드가 포털사이트에 오르고 관련 제품이 완판되는 등 영화 외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자고 일어나면 매일 다른 사람으로 모습이 바뀌는 남자 우진은 이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사회생활을 해나갈 수 없습니다. 여기엔 사랑도 포함돼있죠. 그런 우진이 반하게 된 여자 이수. 그는 무던한 노력과 진심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는데 성공하게 됩니다. 


 

출처: Naver 영화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사랑을 지켜 나가는 가슴 따뜻한 이 영화에서 눈이 등장하는 장면은 애석하게도 이별 장면입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자신 때문에 정신과 약까지 복용할 정도로 힘들어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우진이 덤덤히 이별을 말하는 순간이지요. 사랑 영화에서 눈이 등장하는 장면은 응당 달콤한 러브신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일반적이지만, 너무나 소담스럽게 눈이 내리는 골목길에서 고요하게 이별을 하는 모습은 왠지 더 가슴 시리게 다가옵니다.


그렇지만 영화가 주는 전체적인 감성은 따뜻함 그 자체입니다. CF감독 출신인 백종렬 감독의 영상미와 아기자기한 에피소드, 그리고 소소한 유머까지, 눈 오는 날 연인과 함께 보면 부담 없이 좋을 그런 영화입니다.



 따뜻한 포옹을 좋아하는 눈사람이 주는 감동 <겨울왕국>


외화 OST를 이렇게 전국민이 따라 불렀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대단한 열풍이 불었던 <겨울왕국>은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 사상 유일무이하게 1천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입니다.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는 언니 엘사와 하나뿐인 동생 안나. 자라날수록 엘사의 이 능력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어가고, 급기야 동생 안나까지 다치게 하자 자신이 있던 왕국을 얼음으로 만든 채 홀연히 떠나갑니다. 얼어버린 왕국의 저주를 풀고 언니를 찾기 위한 안나의 모험을 중심으로 영화는 펼쳐지게 되죠. 디즈니 특유의 환상적인 영상과 탄탄한 스토리, 극에 재미를 더해주는 주변 인물까지 모든 요소들이 탄탄하게 짜여져 <겨울왕국>은 큰 재미와 볼거리를 만들어냅니다. 


 

출처: Daum 영화


특히 많은 사랑을 받았던 조연이 바로 눈사람 '올라프'였죠. 올라프는 안나의 곁에서 온갖 여정을 함께하며 자칫 어두울 수 있는 극에 활력을 불어 넣는데요. 올라프가 단지 익살꾼 조연으로 그치지 않고 아직까지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 덕분입니다. 


몸이 얼어가는 안나 위해 따뜻한 벽난로 앞에 자리 잡은 올라프. 벽난로의 온기 때문에 점점 녹아 내리는 올라프를 보고 깜짝 놀라는 안나를 향해 올라프는 말합니다. 


“누군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녹아도 좋아(some people are worth melting for)”


그러고는 흘러내리는 자신의 볼을 쓰윽 끌어올리는 올라프의 표정에 눈물을 훔쳤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더군요. 


당시 ‘Let it go’ 열풍에 자칫 피로를 느껴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면 이번 기회에 올라프의 시점에서 다시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따뜻한 포옹을 좋아한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이 작은 눈사람에게서 진정한 사랑이 무언지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눈(snow)으로 세상에 눈 뜬 소녀의 이야기 <블랙>


영화 <블랙>은 제목처럼 온 세상이 캄캄한 세상을 살아가는, 앞을 볼 수도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는 소녀 미셸의 이야기입니다. 시각과 청각 장애는 자연스레 미셸이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없게 만들고, 그렇게 그녀는 규칙이나 질서 등 어떤 것도 지키지 못하는 사회적인 고립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런 미셸을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바로 그녀의 어머니가 고용한 교사 사하이. 사하이 선생님의 끊임 없는 노력 끝에 그녀는 단어와 소리의 관계에 대해 깨우치게 되는데요. 그녀가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감각인 촉각을 이용해 물을 직접 만지도록 하고 그 물로 그녀의 손바닥에 글자를 반복해 써주며 새로운 깨달음을 선사합니다.


 

출처: Daum 영화


물과 함께 미셸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또 다른 매개체는 눈(snow)인데요. 사하이는 미셸의 손을 뻗어 눈을 만지게 하고 손바닥에 snow를 쓰며 말해주기를 반복하죠. 세상의 모든걸 하나하나 촉각으로 느껴가며 의미를 깨우치게 되는 모습은 두 사람간의 소통, 또 미셸이 세상과 소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이 장면은 마치 어린 시절 읽었던 헬렌켈러 위인전을 떠오르게 하는데요. 안타까운 장애 때문에 어두운 세상을 살아가는 미셸은 헬렌켈러, 세상 속에 그녀가 강하고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가르침을 아끼지 않는 사하이에게서는 설리반 선생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캄캄한 세상을 사는 소녀가 흰색의 단어를 깨우치게 되기까지는 선생님의 헌신과 진심 어린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죠. 추운 계절, 서로를 위해 온 마음과 감각을 다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 따뜻해지는 감동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겨울 영화의 클래식 <러브레터>


'왜 이영화가 안 나오나' 생각하셨죠. 겨울 영화의 클래식,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입니다. 영화의 대부분이 흰 눈으로 뒤 덮인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하는 턱에 '눈'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영화가 됐죠. 


영화는 불의의 산악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지이 이츠키를 중심으로 남겨진 그의 연인 히로코와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중학교 동창 후지이 이츠키가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펼쳐집니다. 후지이 이츠키가 그의 과거 기억을 히로코에게 공유 해주며 이야기는 전개되어 가죠.


 

출처: Daum 영화


아침 해가 뜨는 설산을 향해 먼저 떠나간 첫사랑을 애달프게 부르는 여주인공 후지이 이츠키가 등장하는 장면은 단연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흰 벌판을 정신 없이 헤쳐 걸으며 닿을 수 없는 곳에 안부를 묻는 그 장면은 영화를 처음부터 몰입해서 보았다면 절로 코 끝이 찡해지게 합니다. 너무 많은 패러디로 희화화 됐다 하더라도 말이죠. 


이 영화는 1999년 국내에 개봉된 이후 많은 사랑을 받아 2013년과 올해 초 극장에서 재개봉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많은 사랑을 받는 영화인지라 아직 못 보신 분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추천 드립니다. 사실 아직 못 보신 분들이 부럽기도 하네요. 이 영화가 주는 순수하고도 아련한 첫사랑의 설렘을 느낄 기회가 아직 남아있다니 말입니다. 



 차갑지만 따뜻한


눈에는 참 신기한 속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수증기가 차게 만들어져 떨어지는 일종의 얼음인데, 떠올리면 따뜻한 느낌을 주니까요. 아무래도 그건 추억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눈이 내리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던 기억, 그 감정이 만들어낸 이미지의 온도가 물리적인 온도를 이겨내는 것 같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있는 곳의 하늘은 어떤가요?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다면 오늘 저녁엔 추천해드린 영화와 함께 따뜻함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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