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카펫 ‘조선철’을 아시나요?

Story/효성



부쩍 추워진 날씨 탓에 선뜻 외출해볼 마음이 잘 생기지 않는 요즘. 그런데 또 집에만 있자니 괜히 아쉽기도 하고. 이럴 때 갈 만한 곳들 중 하나가 바로 전시회 아닐까요. 전시장 안에서는 왠지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느낌이죠.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일시정지’ 시켜볼 수 있는 공간이랄까요. 나와 전혀 무관한 줄 알았던 전시작들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묘한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전시회의 가장 큰 매력일 텐데요. 


그래서 이번 시간엔 전시회 하나를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지금처럼 추운 날과도 연관성이 있는 전시죠. 조선시대에 만들어지고 사용된 다채로운 카펫을 볼 수 있는 자리랍니다. 경운박물관에서 지난 10월 6일 시작된 특별전 <조선철(朝鮮綴)을 아시나요>예요.





 일본에 전래된 조선 카펫


‘조선철’. 이름조차 생소하실 분들이 많을 거예요. 날실은 면실, 씨실은 양모실을 이용해 ‘철’이라는 직조 방식으로 짠 조선시대 양탄자를 뜻합니다. 왕족과 양반 층 사이에서 가마 방석 혹은 장식품으로 널리 쓰였다고 하죠. 


조선철은 일본 교토 기온 지역에서 면면히 사랑받아온 우리나라의 카펫이에요.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자취를 감춘지라 그동안 볼 기회가 없었죠. 그래서 이번 전시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교토 기온재단 고문인 요시다 고지로(吉田孝次郎) 선생의 소장품 36점을 국내에 들여와 전시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조선시대의 아름다운 직조물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거예요. 


타피스리(tapisserie) 기법인 철직(綴直)으로 제작되는 조선철. 염소 같은 짐승의 거친 털을 씨실로 하여 문양을 짜 맞추거나, 먹이나 안료를 활용해 선이나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입니다. 

중국 당나라 때 소악(蘇驛)이라는 사람이 쓴 ‘두양잡편(杜陽雜編)’에 조선철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어요. 이미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카펫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졌고, 외국에 특산품으로까지 보내졌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상당수가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를 통해 일본으로 전해졌는데, 이때 ‘조선철’이라는 명칭이 일본인들 사이에 생겨났다고 합니다. 주로 귀족 가문이 걸개나 깔개로 이 조선철을 사용했다고요.


 

 


이렇게 유명했던 조선철이 왜 지금은 이렇게나 낯설게 느껴질까요? 온돌 보급처럼 생활양식의 변화로 인해 서서히 사용량이 줄었다는 설이 있기는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조선철은 딱 두 점이라고 해요. 방이나 창문에 두르는 휘장 용도로 쓰였던 것들이 한국자수박물관에 소장돼 있죠. 


 

뉴스에 소개된 <조선철을 아시나요> 특별전 / 출처: YTN 유튜브 채널



 일본에 건너갔던 조선철이 돌아오다


앞서 소개해드렸듯 <조선철을 아시나요> 전은 일본 교토 기온재단 고문 요시다 고지로 선생의 도움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요시다 선생이 소장 중인 조선철 36점 중 대부분은 조선통신사를 거쳐 일본에 전달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전시장에 가시면 18세기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제작된 다양한 조선철들을 보시게 될 텐데요. 섬세한 문양이 촘촘히 새겨진 ‘오학병화도’와 ‘팔접도’, 화려한 무늬가 인상적인 ‘사자국당초’을 비롯해 새·나비·동자·사자처럼 한국의 풍수나 중국의 고사를 시각화한 형형색색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공개된 조선철은 국내에 남아 있는 두 점과 제직 기법이 매우 유사합니다. 섬유 분석 결과, 우리나라에서 사용되던 양털과 염소털이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죠. 일본의 조선철이 ‘우리 것’이라는 실증입니다. 

조선 카펫은 표면이 굉장히 거칠지만 재질이 모(毛)이므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삭거나 변질되지 않습니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독특한 문양 또한 특징입니다.



 조선철의 품격을 직접 확인하세요


경운박물관은 전시 개최를 기념해 지난 10월 8일, 요시다 고지로 선생의 특강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철, 일본에서 전해 내려온 조선 카펫’이라는 주제로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는데요. 요시다 선생은 일본 3대 축제 중 하나인 ‘기온마츠리(祇園祭)’에까지 조선철이 쓰이게 된 경위와 역사를 상세히 설명해 큰 호응을 얻었죠. 

기온마츠리는 매년 7월, 교토 기온 지역의 야사카진자(八坂神社)를 중심으로 한 달간 열리는 민속제입니다. 축제 중엔 일본 전통 가마인 야마보코(山車) 서른두 채가 기온바야시(祇園囃子)라는 전통 음악에 맞춰 교토 시내를 행진하는데요. 바로 이때, 수레 장식품이나 가마 방석으로 조선철이 쓰였다는 것이죠. 기온마츠리가 869년부터 시작됐다고 하니, 조선철의 역사 또한 짐작할 만하죠?  




청동기 시대부터 이어진 우리나라 전통 공예 조선철. 하지만 이런 유구한 역사와는 달리 현재 우리나라에 이 조선철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요. <조선철을 아시나요> 특별전을 계기로 조선철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발해지기를 바라봅니다. 요시다 선생과 함께 조선철을 연구한 고(故) 민길자 교수의 16~18세기 작품 모사본도 전시되고 있으니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전시는 내년 2월 말까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