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에서 찾은 지혜] 고전에서 배우는 설득의 기술

Story/효성



 

김 과장은 이 부장 앞에만 서면 작아집니다. 무슨 말만 하려고 하면 꽉 막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좋은 방안인데 이 부장에게 그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형편없는 아이디어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렇다고 이 부장에 대해 진정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가급적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최소한 한 번은 이런 상사나 동료, 후배를 만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모두가 괴롭습니다. 타개할 방법은 없을까? 답은 ‘있다’입니다. 소통과 설득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소통과 관련해 우리가 착각하는 것은 서로 마음을 툭 터놓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하면 상대방이 내 진심을 알아주고 결국 문제가 풀릴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소통과 설득에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중국 고전 중에 소통과 설득의 기술을 높여줄 최고의 텍스트가 하나 있습니다.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춘추전국시대 종횡가의 교본이었던 <귀곡자(鬼谷子)>가 그것입니다. 실명과 행적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귀곡 선생이 쓴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수제자 중에는 ‘합종연횡(合從連衡)’이란 말을 만든 소진과 장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은 종횡가의 대표 주자입니다.   





이제 <귀곡자>에 나온 유세술을 바탕으로 설득의 기술을 배워봅시다. 유세술은 왕을 찾아가 관직을 얻기 위해 설득하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성공하면 입신양명의 길을 갈 수 있지만 실패할 땐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이런 절박함 때문인지 <귀곡자>의 유세술은 지금 봐도 깊고 오묘합니다. 


먼저 설득하는 기술의 대원칙은 ‘패합(稗闔)’입니다. ‘패’는 쪼개서 연다는 의미이고, ‘합’은 빗장을 걸어 잠근다는 뜻입니다. 풀이하면 마음을 열 때와 닫을 때, 말을 할 때와 침묵할 때를 적절하게 가려야 한다는 게 패합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중요한 프로젝트에 대한 구상이 거의 끝났지만 다른 지원부서는 아직 준비돼 있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장에게 프로젝트 내용을 보고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과업을 완료한 것에 흥분한 나머지 보고한다면 사장은 다른 부서에도 빨리 끝내도록 독촉할 것입니다. 


당연히 다른 부서 사람들은 앞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실적만을 과시하기 위해 보고를 서두른 사람을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소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반대로 나는 구상이 끝났지만 다른 부서를 위해 조금 기다려준다면 프로젝트 자체의 마무리는 더욱 앞당겨지고 소통에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자신이 가진 정보나 마음을 언제 열고 닫을 것인가’ 하는 것은 소통과 설득의 대원칙입니다. 현실 상황은 변화무쌍하기에 그에 따른 패합은 신중해야 합니다. 귀곡 선생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담장은 틈새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하고 나무는 마디에서부터 부러지기 시작하니 인간사도 이런 틈새의 차이로부터 시작한다. 새로운 상황은 과거의 상황 변화로부터 이어지고 새로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하다. 계획과 전략을 사용할 때는 틀에 박힌 올바른 방식보다 현실에 적합하고 기발한 것이 좋다.”  







설득의 기술에서 다른 중요한 개념은 ‘췌(揣)’입니다. 이는 정보를 알아내는 방법을 뜻합니다. 정보에는 현실정보와 심리정보가 있습니다. 현실정보는 객관적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는 상대방의 지연과 학연, 경력, 직책, 인간관계 등 자료 수집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심리정보를 파악하는 방법은 상대의 취향과 선호도, 특이한 성격 등 주관적인 특징을 조사하는 것입니다. 이는 잦은 접촉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취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직장 내에서 어떤 사람을 설득하려면 그에 대한 현실정보와 심리정보를 마스터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겸(飛箝)’과 ‘마(摩)’, ‘내건(內揵 )’은 상대의 기분을 맞춰 나의 견해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기술입니다. 비겸의 ‘비’는 먼저 상대방을 인정하고 가급적 많은 장점을 열거하며 기분을 띄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그가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나의 설득이 관철되도록 재갈을 물려야 하는데 이게 바로 ‘겸’입니다. 


‘안마’의 한 글자를 이루는 ‘마’는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굳게 닫힌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상대의 방어 기제를 해체해야 하는데 ‘마’가 바로 이런 역할을 합니다. ‘내건’은 상대의 속마음을 읽고 거기에 맞춰 대응함으로써 내 뜻에 얽어 매는 기술입니다. 이 개념들의 핵심은 원활한 소통을 위해선 먼저 상대를 인정하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인 뒤 거기에 맞춰 나의 의견을 수정 보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상대를 완벽하게 설득해 내 뜻을 관철시키려면 다른 개념들이 필요합니다. ‘오합(忤 合)’과 ‘권(權)’, ‘결(決)’, ‘반응(反應)’이 여기에 속합니다. ‘오합’은 결별과 연대의 법칙을 뜻합니다. 결별해야 하면 결별하고, 연대해야 하면 연대합니다. 설득해서 될 것 같으면 의기투합하고, 그렇지 않으면 협상을 끝낸다.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권’은 ‘권고’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설득의 최종 단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그물을 쳐놓듯 반문과 질문을 하며 상대의 심경 변화를 읽는 ‘반응’이라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 후 상대의 결단을 촉구하는 ‘결’로 설득을 완성합니다.  





지금까지 열거한 <귀곡자>의 기술을 체화한다면 직장에서 소통의 달인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수준에 이르면 몸에 익을 것이고 소통과 설득에 관한 한 유능한 인재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해보길 바랍니다. 끝으로 귀곡 선생이 전하는 소통의 노하우를 음미해봅시다. 



“유세는 상대를 기쁘게 설득하는 것이다. 설득은 반드시 상대의 조건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과 말할 때는 박학다식함을 드러내야 하고, 


우둔한 사람과 말할 때는 상대가 분별하기 쉽게 해야 하며, 


구별을 잘하는 사람에게는 간단히 핵심을 말하고, 


신분이 높은 사람에겐 기죽지 말고 기세등등해야 하며, 


돈 많은 사람에게 말할 때는 자신의 고상함을 드러내야 하고, 


가난한 사람과 말할 때는 이득에 근거해 설명해야 하며, 


신분이 낮은 사람에 대해서는 깔보지 않고 겸손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용맹한 자에게는 과감한 결단을 드러내고, 


과실이 있는 사람과 말할 때는 예리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것이 유세의 기술인데 사람들은 흔히 그 반대로 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