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산책] 배려를 바탕으로 공정하게 행하다

Story/효성



 

사촌이 땅을 살 때 배가 덜 아프려면?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우리 속담이 있습니다. 흔히 ‘남이 잘되는 것을 볼 때 이유 없이 부리는 시기와 질투’라고 해석하지만 이 속담에는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만약 가족 중 한 사람이 성공하고 부를 얻게 되면 모두 기뻐합니다. 그 행복을 가족 공동의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전혀 모르는 사람이 억만장자가 된다 한들 조금 부러운 감정은 있을지언정 특별한 감흥은 없습니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항상 곁에서 보고 교류하지만 한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사촌’이 논을 사게 되면 직접적으로 심리적인 타격을 받습니다. 


지금은 좀 다르지만 옛날에 사촌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한 마을에 살면서 서로 부대끼며 살아온 사이입니다. 속속들이 아는 존재인 것입니다. 공부도 고만고만했고 특별히 나보다 나은 것도 없는 사촌이 그야말로 ‘운’이 좋아서 떵떵거리고 살게 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애고, 내 팔자야!” 하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같은 직장의 한 부서에서 함께 근무하는 동료나 입사 동기들은 심리적으로 ‘사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종일 얼굴을 맞대며 근무하고 퇴근한 후에는 가끔 상사를 안줏거리 삼아 술잔도 기울이면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 서로 가릴 것도 숨길 것도 없는 사이지만 인사고과 시기나 승진 철이 되면 여지없이 이들은 사촌이 되고 맙니다. 한 사람은 승진이라는 ‘논’을 산 행운아가 되고, 또 한 사람은 ‘배가 아픈’ 운 나쁜 사촌이 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진심으로 축하하고 속으로도 축하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미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이 인사가 객관적으로 볼 때 편파적이고 불공정하다면?

 

 

 

 

물론 가장 치열한 경쟁의 현장인 직장에서 ‘모두가 행복한 평등’이라는 개념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잘 알다시피 우리 인류의 발전, 더 나아가 생존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경쟁이기 때문입니다. 조직의 혁신과 기강을 바로 세우려면 당연히 경쟁이 있어야 하고 신상필벌은 분명히 행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덧붙여 한 가지 꼭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상을 줄 때는 ‘공정’, 벌을 줄 때는 ‘인간적인 배려’가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사촌’은 배가 아프고 온 마을은 분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깨달음을 주는 고사 한 자락


 

깨달음을 주는 고사 한자락, 제나라 경공.

 

 

제나라 경공의 말이 병들어 죽자 경공이 노하여 말을 관리하는 책임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재상 안자가 나섰습니다.


“이 자는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도 모르고 죽는 것이니, 제가 왕을 위해 따져 그가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하겠습니다.”


왕이 허락하자 안자가 말했습니다.


“너의 죄는 세 가지다. 왕의 말을 기르는 임무를 지키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죄다. 또 왕이 가장 아끼는 말을 죽게 한 것이 두 번째 죄다. 말 한 마리 때문에 왕으로 하여금 사람을 죽이게 했으니 백성들은 반드시 왕을 원망할 것이고, 이웃 나라에서는 왕의 위엄이 떨어지게 될 것이니 이것이 세 번째 죄다.” 

 

<안자춘추> 

 

 

이 말을 들은 왕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깨닫고 그 신하를 풀어주도록 명했습니다. 그 당시 왕의 말을 다루는 관리는 고의든 실수든 왕의 말을 죽게 하면 그 역시 목숨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전쟁이 일상사이던 시절 말은 전장에서 왕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는 소중한 전쟁 도구였고, 평상시에는 왕의 권위를 높여주는 소위 ‘패션의 완성’이 되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왕은 이 법도를 엄격하게 지키려 했고, 안자는 그 법도에 인간적인 배려를 더한 것입니다.

 

 

 

 

안자는 춘추시대에 관중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재상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재상으로서의 역량이 탁월하기도 했지만 상대방을 설득하는 말재주 역시 대단했습니다. 단순히 허울만 좋은 말솜씨가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인의의 정신,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지식의 충실함에 바탕을 두고 있는 말이었기에 왕은 물론 모든 사람을 설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고사에는 한 조직의 구성원들이 상하 간에 어떤 자세와 원칙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지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안자는 왕이 잘못을 저지르자 그것을 직접적으로 간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을 두드려 스스로 깨닫게 했습니다. 직설적인 말로 왕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도록 한 것입니다. 왕 역시 순간적인 감정을 참지 못해 작은 실수를 저지른 부하를 죽이려 했지만 신하의 지혜로운 간언을 듣고 스스로 깨달아 잘못을 바로잡았습니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에게는 무엇보다도 신상필벌의 원칙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작은 실수까지 찾아내 벌을 주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되기도 합니다. 사소한 실수까지 모두 찾아내 벌하고, 작은 실패에도 용서가 없다면 조직의 역동성은 사라지고 결국 그 조직원들은 소극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상필벌의 근간, 공정과 배려

 

 


출처 : 네이버 책

 

 

‘세상의 혁신을 촉진하는 주요 요인은 바로 호기심 두려움, 부에 대한 욕망, 의미를 추구하는 욕구, 이 네 가지라고 한다. 그리고 이 모두를 어우르는 것이 바로 인센티브다.’ <어번던스>


인센티브는 신상필벌의 서구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인센티브든 신상필벌이든 용어가 어떻든 간에 그 시스템이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공정함이 근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합니다. 겉으로는 엄정하되 속을 들여다보면 인간적인 배려가 넘치며 상하 간은 물론 부서 간에도 모든 벽이 허물어져 소통이 물같이 흐르는 조직, 바로 그런 조직이 세상을 바꿉니다.

 

 

글을 쓴 조윤제 작가는 기업인으로, 출판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며 다양한 책을 탐독한 끝에 동양고전의 혜안을 깨닫고 이를 사람들에게 올바르게 전파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저서로 <인문으로 통찰하고 감성으로 통합하라>, <말공부>가 있다.

 

 

  조윤제(작가) 일러스트 연희정  진행 진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