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의 공감인터뷰] 폐타이어 조각가 지용호 "자기안의 예술성을 깨우다"

Story/효성

 

 

 









폐타이어에 생명을 불어넣은 전통 조각계의 이단아라기에, 홍익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뉴욕대 대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기에, 지난 2010년 11월엔 ‘상어(Shark)’라는 작품이 필립스 뉴욕컨템퍼러리 경매에서 14만 5,000달러(약 1억 3,000만 원)에 낙찰되는 등 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와 크리스티, 필립스 경매를 통해 해외 미술계에서 작품성을 인정받는다기에 뭔가 대단한 과거가 있을 줄 알았다.

알에서 태어난 신화의 주인공은 아니더라도 스티븐 스필버그마냥 ‘어릴 때부터 영화 만들기를 좋아했다’는 식의 특별한 시작을 품었을 거라 짐작했다. 한데 지용호는 평범했다. 대한민국의 여느 학생처럼 입시미술에 매달렸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지금의 조소를 경험했다. 그렇게 마주한 조각과의 1년은 사실 너무 짧았다. 온전히 느껴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실패는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는 ‘재수생’이 되어 고된 1년을 다시 견뎠다.






“처음에요? 인체요! 흙을 뜯었다 붙였다 하면서 여성을 빚었는데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첫 누드모델이었는데 정말 아름다웠거든요.(웃음) 뭐랄까요, 우리나라 교육은 처음엔 너무 규칙적이라서 답답하거든요. 획일화된 개성 없는 밋밋한 작품도 불만이고. 한데 나중에 보니 그런 게 기본 훈련이었더라고요. 그 순간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큰 작업을 못했을 거예요.”

지용호 작가는 꾸준히 작업하면서 마치 서양의 ‘없음(nothingness)’과 동양의 ‘무(無, no-thingness)’의 차이를 느낀 양 개안했다. 합리적인 사고로는 없는 것이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었다. 무(無)는 모든 가능성으로 꿈틀거리는 절대적인 잠재성이므로. 아직 싹트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무(無)! 그 지점에서부터 그의 혁신적인 창의성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학교 다닐 때 선배들 일을 도우면서 여러 경험을 했어요. 수업 시간도 좋았지만 학교 밖에서 보고 배운 게 많았죠. 제가 우연적이면서도 감각적인 걸 좋아하는데 그 시절 그런 것들을 자주 접했어요. 서양미술의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것과 사뭇 다른 그 동물적인 우발적 영감이 다른 이들과 차별화된 작업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봐요.”

지 작가가 지닌 소위 동물적인 직관은 혁신적 창조의 근간이었다. 콘셉트에 맞춰서 정확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에겐 그다지 재미있는 방식은 아니었다. 철학과 개념화, 정형화된 콘셉트보다 먼저 감각과 직관을 따르는 게 훨씬 더 지 작가다운 작업물을 이끌어냈다. 폐타이어는 그래서 사용하게 된 매체였다.

“제대 후 복학하고서부터 폐타이어를 재료로 썼어요. 왜 하필 폐타이어냐고 물으면 그냥 내 작품을 잘 나타낼 수있는 재료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어요. 그냥 느낀 거죠, 강하면서도 피부 같은 재료구나, 하고. 관건은 흙이나 돌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지였는데 의외로 다루기가 어렵진 않았어요.”

보편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폐타이어란 소재는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그의 주특기인 의외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게다가 돈이 넉넉지 않던 시절이라, 여기저기 널린 폐타이어는 귀인처럼 느껴졌다. 길에서 마주한 폐타이어를 차에 싣고 작업실에 가져가 자르고 붙이기를 하는 사이, 그는 이제껏 가보지 못했던 세상과 조우할 수 있었다. 그렇게 10년 동안 지용호 작가는 ‘뮤턴트(변종, mutant)’를 주제로 동물을 조각하며 폐타이어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엄청난 야성에 흠칫 놀라다가도 가만 들여다보면 한없이 슬프고 연약한 그의 동물들은 뭇사람의 시선을 끌었다.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을 뮤턴트인 까닭이었다. 그렇게 둘도 없는 짝패가 된 지용호와 폐타이어는 어딜 가나 함께였다. 대학 졸업 후 답답한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도피성(?) 유학을 떠나면서도 지 작가는 폐타이어를 버리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한 것을 끝까지 책임지는 과정은 조물주가 생명을 빚는 경이로움과 비견할 만했다.

“뉴욕에서 파인 아트를 공부할 때 더 다양한 매체를 사용할 것을 권유받았어요. 비디오나 페인팅, 퍼포먼스 같은 거요. 한데 저는 타이어로 좀 더 시도하고 싶은 게 있어요. 기왕 시작한 거니까 원하는 만큼 끝까지 만져보고 싶었던 거죠.”





첫 번째 개인전은 성공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의 선택은 탁월했다. 유전자 변형 식품을 먹는 사람들이 환경과 뮤턴트를 고민하는 시절이었던 것. 더군다나 현대인의 가슴속엔 뮤턴트가 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뮤턴트가 낯설고 두렵지만 사실 누구나 뮤턴트를 꿈꿔요. 우리가 갈망하는 우월한 사람이 뮤턴트 아닌가요. 좀 더 넓게 보자면 저는 제 작품에 나타난 강하지만 약한 양면성, 이것 역시 뮤턴트라고 생각해요. 사람들과 닮은 부분이기도 하고요.”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감각이 뛰어났다.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과 불편함, 그 뒤에 숨은 슬픔과 외로움을 그는 의도 없이 읽어냈다. 그래서 몇몇 이들에겐 불편하게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중세의 장인처럼 공들여 만든 뮤턴트가 마치 자신들의 늑장 아래 숨겨둔 치부인 양 느껴졌을 테니. 최근에 만든 사람 뮤턴트는 그 불편함을 극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나 내용은 사람에 관한 것이에요. 굳이 우리욕망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구제역 사태,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면서 인간이 느끼는 슬픔, 그게 제 작품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지 작가는 폐타이어 뮤턴트 동물의 강렬함을 온전히 수용하며 즐거워 할 수 있는 최고의 관객은 어린이라고 덧붙였다. 꽃을 볼 때 ‘와, 예쁘다!’ 감탄하듯이 현실에 없는 피조물에 스스럼없이 감탄하는 그들이야말로 부조리 없는 세상을 사는 유일한 존재인 셈. 그게 고마워서 그는 종종 “어린이까지 설득시켰는데 더 뭘 하겠냐”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창의성은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것 같아요. 물론 그것만으로 작품이 나올 수는 없죠.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객관화하고 정리하느냐가 관건이에요. 좋은 휴대전화를 만드는 것, 물품을 생산하는 것도 비슷하다고 봐요. 자기 안에 잠자고 있는 창의성을 깨우면 돼요. 미술 작품만 예술이 아니라 일상이 예술이에요.”

직관과 감각을 사용해서 일단 도출해낸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일. 그것으로 삶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 지용호 작가. 그의 뮤턴트는 어쩌면 현실의 차가운 이성으로 마비된 잠자는 감성을 빗댔는지도 모른다. 살아남아야 하는 21세기 정글에서 맹수로 위장한 현대인. 그들의 내면에 깃든 예술성을 깨우는 작업은 지용호 작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꿈꾸는 위대한 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