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osung Blogger] 모모리의 여행이야기(5) 휴가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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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osung Blogger] 모모리의 여행이야기(5)
휴가는 이미 시작되었다.



무더위로 입맛이 없습니다. 사람의 체온 36.5˚C가 이렇게나 높은 온도인지 몰랐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부대끼는 36.5˚C짜리 난로들 덕분에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사우나를 한바탕 끝낸 모습이 됩니다. 커지는 상사의 고함 소리에 맞추어 불쾌지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갑니다. 게다가 한국은 정말 아열대 기후로 변화하는 걸까요? 해가 갈수록 더위의 정도는 더해가고 그 기간도 길어집니다. 바야흐로 여름이 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름을 기꺼이 견뎌낼 수 있는건 여름에 들어야 제 맛인 신나는 가요와 시원한 팥빙수, 그리고 ‘여름 휴가’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요, 여름 휴가. 실제로 여름 휴가를 떠나려면 아직도 많은 날들이 남아 있지만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어깨가 들썩거립니다. 누군가 그랬죠. 남녀 사이의 연애에서 가장 설레는 기간은 ‘이 사람과 사귈까 말까’ 줄다리기 하는 시간들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엔 어디로 휴가를 떠날까, 고민하고 상상하는 그 순간들이야 말로 여름 휴가의 가장 설레는 순간이 아닐까 합니다. 머릿속 한 켠에 ‘휴가’를 심어놓은 우리에게 있어 휴가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지요.




오래 전이었어요. 여름 휴가를 이용해 캄보디아 씨엡립으로 배낭 여행을 떠났죠.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크메르 왕조의 유적지를 거닐면서 찬란했던 그곳의 과거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또한 현재 캄보디아인들의 고단한 삶을 바라보며 그 대조적인 모습에 놀라기도 하고요.

어느 사원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맨발의 꼬마 아이가 저를 졸졸 따라오더군요. 책을 사달라는 겁니다. 씨엡립 유적지들에 대한 사진과 해설이 담긴 영어로 된 책이었습니다. 영국에서 출판된 책이었는데 사진집으로서도 전혀 손색 없는 꽤나 괜찮은 책이었죠. 아이는 20달러를 요구했죠. 저는 딱 잘라 말했습니다. “5달러, 그 이상은 안 돼”. 아이가 포기하고 갈 줄 알았거든요. 근데 그 아이, 15달러, 12달러 가격을 낮추면서 계속 따라오는 겁니다. 저는 다시 한 번 5달러를 강조했고 아이는 결국 5달러에 그 책을 저에게 넘겼습니다. 원가만 해도 5달러가 훨씬 넘을 책을 싼 가격에 득템했다는 뿌듯함에 의기양양해져서는 숙소로 돌아왔지요.  

저녁에 숙소에서 저보다 훨씬 어린 한국인 여행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자도 그날 사원에서 저와 똑같은 책을 아이에게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얼마 줬어요? 내 물음에 그 여행자는 10달러라 대답했죠. 저는 완전 기분이 좋아져서는 나는 5달러에 샀다고 자랑을 했어요.
그 때 그 여행자가 그러는 겁니다. 자기는 10달러에 사게 되어 더 기분이 좋다고 말이죠. 그 책의 가치가 10달러가 넘어 보이는데 10달러라는 싼 가격에 샀으니 자기에게 좋은 일이고, 제법 비싼 가격에 넘긴 덕분에 가족들의 밥벌이를 위한 발품을 조금 덜 팔아도 되게 되었으니 아이에게도 좋은 일이라고요. 그러니 win-win이라고.



머리에 쿵,하더군요. 그날 그 어린 여행자는 저의 스승이 되어 준 셈이었죠. 그 때 이후로 저는 소위 물질적으로 가난한 나라에 가면 물건값을 악착같이 깎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적당히 흥정하다가 제 스스로 만족스런 가격이 되면 그걸로 끝이죠. 나보다 누가 더 싸게 샀더라, 그건 아무 의미가 없더라고요.

저는 가능하면 여름 휴가는 해외로 그리고 홀로 떠납니다. 휴가철의 한국은 너무 많은 사람들로 정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름 휴가’ 기간을 제외하면 해외로 나갈만한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이유도 있지만 해외에 나가면 일상에선 만날 수 없었던 마음의 스승을 만나게 되거나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되는 ‘의외의 순간’을 종종 마주하기 때문입니다.
 
올 여름 당신의 휴가 계획은 무엇인가요? 각자마다 휴가를 보내는 방법도 휴가를 떠나는 시기도 다르겠지요. 하지만 모두들 한가롭게 쉰다는 의미의 진정한 휴가(休暇)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한가로운 휴가여도 좋고, 마음이 한가로이 쉼을 얻는 휴가여도 좋습니다. 그 재충전의 시간들이 여름이 몰고 오는 무더위와 인간 난로들과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게 해 줄 원동력이 되어준다면 그건 ‘최고의 휴가’임이 분명할 겁니다. 



아직 휴가가 멀었다고요? 아니요, 휴가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올 여름의 휴가는 지난 어느 때보다 더 기억될 수 있도록, 진정한 마음의 휴가(休暇)가 될 수 있도록 미리 챙겨봐요. 기대해 봐요. 어깨를 들썩이며 계획을 세워봐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 당신이니까.



저요? 저도 계획대로라면 머지않아 휴가를 떠날 겁니다. 다음 달엔 좀 더 까매진 얼굴과 좀 더 건강해진 몸과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이 공간을 채우고 있을 겁니다.

그럼, 모두의 휴가길에 웃음과 안녕이 함께 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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